[盧대통령, 권력이양 제의]국민에 묻지도 않고…

  • 입력 2005년 7월 29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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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8일 ‘연정론’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켰다. 한나라당에 정권을 이양할 테니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개편하자는 안이다. 노 대통령의 제안은 지금까지의 것에 비해 매우 구체적이고 훨씬 대담하다.

▽왜?=노 대통령은 “결코 무슨 이익을 취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권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어떤 속임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크게 세 가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여소야대 구도다. 단순히 여야 의원 수에 대한 고민만은 아니라고 한다. 노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오히려 ‘여당의 미래’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여권 핵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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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석은 146석. 과반수(150석 이상)는 아니지만 ‘거대 여당’이다. 게다가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과 정책연합을 하면 과반수 확보가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이 여소야대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은 여당의 기반이 취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을 만난 여권의 인사들은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인식하는 듯했다”고 전한다. 그것이 연정론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둘째, 잔여 임기의 관리다. 지금처럼 허약한 여당으로 2년 반이나 남은 임기를 관리하기 어렵다. 열린우리당은 ‘친노(親盧)’의 기치 아래 다양한 사람이 모여 급히 만들어진 당이다. 언제든 사분오열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10월 재·보선, 내년 지방선거가 어렵다. 자칫하면 힘도 써보지 못하고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맞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자신의 주도로 판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야당의 ‘발목잡기’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셋째, 자신의 ‘존재 이유’다. 영남 출신으로 호남의 지원을 얻어 당선된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 이유를 ‘지역주의 타파’라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이를 가시적으로 보여 줄 시간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길어야 내년 지방선거까지다. 노 대통령은 마지막 승부를 빨리 보고 싶어 한다.

▽실현 가능성은?=노 대통령의 제안은 ‘연정→선거구제 개편→지역구도 해소’라는 순차적 해법이다. 하지만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우선 선거구제 개편이 지역구도 타파로 직결되는지 자체가 의문이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열린우리당은 영남에 의석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호남 진입 장벽은 매우 높다. 한나라당이 경계하는 대목이다.

연정으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연합한다 해도 뿌리와 지역이 다른 두 정파가 ‘한길’을 갈 것이란 보장이 없다. 오히려 과거 3당 합당의 후유증처럼 차기 대선을 둘러싸고 내부 갈등이 격화될 경우 혼란은 증폭되고 정파 간, 지역 간 적대감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게다가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연정이 성사되면 그동안 추진해 온 행정복합도시 건설이나 고교평준화 정책 등도 포기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노 대통령의 제안이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그 파장이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난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당 내에서조차 “대통령이 도대체 왜 이러나”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연정 성사를 위한 최소한의 대야(對野) 대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메아리 없는 아우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박근혜 총리’가 內治전담?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제안한 ‘사실상의 권력 이양’은 한나라당에 국무총리 지명권과 내각의 일부를 넘겨주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쉽게 말해 ‘대통령 노무현, 총리 박근혜(朴槿惠)’가 되는 식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 전 국무총리가 손을 잡은 ‘DJP 공동정부’와 형태는 유사하다. 그러나 한나라당 박 대표가 실세 총리를 맡아 일상적 국정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다른 나라의 경우 연정 주도권은 국회 의석수나 득표율이 우선이고 지금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지만 한나라당이 연정에 참여한다면 총리 지명권 등을 포함해 더 양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총리 지명권은 물론 각료 배분에 있어서도 한나라당이 의석비율 이상의 몫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은 실질적으로는 정권 교체 제안”이라고까지 했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이 갖고 있는 어떤 권력을 한나라당에 주겠다는 것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대통령 권력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갖는 연정”이라고 설명했다.

내각제하에서 총리가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대통령의 권력을 상당 부분 총리와 내각에 위임해 이원집정부제 형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현행 헌법하에서 대통령과 총리 간에 권력의 경계선이 명확하게 그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권력 배분의 문제는 한나라당이 대연정을 수용한다면 그때 가서 논의해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 배분이 이뤄질 경우 노 대통령은 외교, 국방 분야의 결정 권한과 함께 대외적인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를 행사하고 내치(內治)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협의해서 맡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노 대통령이 지난해 8월부터 도입한 ‘분권형 국정 운영’이 하나의 모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일상적 국정 운영은 총리와 내각에 맡기고 대통령은 중장기적 국정과제에 집중하는 식으로 권한이 나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권력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인 정무직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 문제는 논란이 될만한 부분이다. 총리직을 한나라당이 가질 경우 각료 제청권은 갖게 되겠지만 국가 주요 기관장이나 공기업 임원에 대한 인사권은 여전히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측은 이에 대해선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한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이해찬(李海瓚) 총리에게 일상적 국정을 총괄하도록 했을 때에 노 대통령이 정부 인사권까지 넘기려 했다”며 “당시 주변에서 만류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연정이 성사되면 논의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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