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쌀개방의 딜레마

  • 입력 2005년 7월 29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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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에 큰 부담이 될 혹 덩어리 하나가 자라고 있다. 겉으로는 별일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혹은 커지게 돼 있다.

쌀 협상에 대한 국회비준 얘기다. 한국은 1993년 12월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쌀에 대해 10년간 시장개방을 유예 받았다. 당시 특정 농산물에 대해 개방을 유예 받은 나라는 5개국.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이 쌀을, 이스라엘이 양고기에 대해 특별대우를 받았다. 이후 일본 대만 이스라엘은 개방을 했고 한국과 필리핀만이 남아 있다.

한국의 쌀 시장 개방 유예기간은 1995년 1월부터 2004년 말까지 10년간. 정부는 지난해 유예기간이 끝나가자 관련 당사국들과 다시 협상을 벌여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더 개방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그 대가로 쌀 의무수입물량을 늘리고, 수입쌀의 일부를 소비자에게 판매하기로 했다.

이 합의는 당장 올해부터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6월 임시국회에서 비준안 처리를 외면하고 9월 정기국회로 미뤘다. 농민단체들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다.

UR협상이 타결될 때 우리는 10년 후에는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후 농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입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이 쌀과 관련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두 가지다. 관세를 물리면서 전면개방을 하느냐, 아니면 의무수입물량을 늘리는 등의 조건을 들어주면서 전면개방을 미루느냐이다. 두 방안이 모두 싫다면 세계무역기구(WTO)를 탈퇴하고 국제무역질서에서 빠지면 된다.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사실은 정부도, 농민단체도, 국회의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올해 의무수입물량을 들여오지 못하면 내년에 올해 것까지 함께 수입해야 한다. 시판해야 하는 물량도 마찬가지다. 올해 분이 내년으로 넘어가면 내년에 한꺼번에 수입쌀이 시중에 쏟아져 나와 정치적 부담은 더 커진다.

농림부 분석에 따르면 지금 국회를 소집해 표결한다고 해도 반대표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한다. 표결이 기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을 질 의원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비준이 부결되면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일부 의원이 묘안을 생각해낸 모양이다. “농림부 차관을 희생양으로 날리면 된다”는 말이 떠돈다. 참으로 한국 정치인다운 발상이지만 비준의 필요성은 인정한 셈이다.

농민단체도 멀리 보아야 한다. 사실 쌀 소득보전 직불제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혜택이다. 이 제도 덕에 수입쌀이 들어와도 최소한의 가격은 보장되는 셈이다. 전면개방도 안 하고 의무수입물량도 없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안 되는 일이다.

한국인에게 쌀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과 달리 개방을 막기 위해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협상’을 하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차라리 시장개방이 한국에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는 실정이다.

어쨌든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 그것도 빠를수록 사회적 부담이 적다. 서로 부담을 떠넘기며 미뤄봐야 혹만 커진다. 농림부와 농민단체, 국회의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김상영 경제부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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