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서경찰서는 심야에 귀가하던 여대생을 납치해 가족에게 돈을 요구한 혐의(인질강도)로 27일 박모(38)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윤모(31·구속) 씨와 함께 25일 0시경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인근에서 여대생 임모(20) 씨를 승합차로 납치해 14시간 동안 끌고 다니며 임 씨 부모에게 몸값 1억 원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씨는 서울 유명 사립대 미대를 졸업한 뒤 1999년부터 부산 A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해 왔다. 그의 아버지는 대법관을 지냈으며, 현재 모 장학재단 이사직을 맡고 있다.
박 씨의 순탄한 삶은 사업에 손을 대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친구의 회사에서 디자인 컨설팅 일을 하던 그는 지난해부터 독립해 직접 의류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수출에 차질이 생겼고, 박 씨는 회사를 살려 보려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인들에게 5000만 원가량의 빚을 지게 됐다.
사정이 어려워지자 박 씨는 8년 전 서울의 모 대학 앞에서 카페를 운영할 때 알게 된 윤 씨를 만나 범행을 공모했다. 윤 씨도 2억 원가량의 카드 빚을 진 상태였다.
납치 장소는 박 씨가 살고 있고 부유층이 많은 잠실의 한 아파트단지를 택했다.
박 씨는 25일 0시경 계획대로 임 씨를 납치했지만 두 시간 뒤 “임 씨 어머니에게 돈을 받으러 가겠다”며 임 씨와 윤 씨를 남겨놓은 채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제주도로 가 한 여관에서 지내다 경찰에 체포됐다.
이에 앞서 윤 씨는 25일 오후 피해자 임 씨가 마포대교 북단에서 차 문을 열고 탈출하는 모습을 본 시민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업이 실패하자 월 120만 원의 강사료로는 버티기 힘들었다”며 “박사과정 할 때까지 부모의 도움을 받아 이번에도 손 벌리고 싶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 씨가 명문가 집안인데도 돈이 없어 범행했다는 진술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추가 범행동기가 있는지를 수사 중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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