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의 슈바이처’ 유민철 박사 정년퇴임

  • 입력 2005년 7월 28일 03시 09분


코멘트
《“제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를 떠나는 것이 가슴 아플 뿐입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블랙라이온국립의료원에서 30년간 인술(仁術)을 펼쳐 와 ‘코리안 슈바이처’로 불리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총재 김석현·金錫鉉) 의료단원 유민철(劉旻哲·64·사진) 박사가 지난달 30일 정년퇴임했다. 유 박사는 퇴임 후 가족과 함께 미국 보스턴에 머물면서도 여전히 에티오피아의 환자들을 걱정했다.》

유 박사는 1975년 에티오피아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정부의 아프리카 파견 의사 모집에 자원했다.

부인 김숙자 씨와 다섯 살 난 딸, 세 살 난 아들과 함께 에티오피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술에 목마른 곳에서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평소의 꿈 때문이었다.

그러나 첫해부터 큰 시련을 겪었다. 1974년 공산화된 에티오피아의 한 병원에서 자본주의 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몇 달 일해 보지도 못하고 쫓겨났다. 현지 의사의 도움으로 블랙라이온의료원에서 의료 활동을 재개했다.

유민철 박사가 지난달 30일 정년퇴임하기 전에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블랙라이온의료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 사진 제공 한국국제협력단

1977년에는 소말리아의 침공, 1991년에는 내전이 이어졌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까지 총격전이 벌어지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한국대사관은 그에게 철수를 종용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귀국할까 생각했던 유 박사를 붙잡은 것은 병실을 가득 메운 환자였다. 800여 병상이 모자라 병원 복도에까지 밀려든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대사관에서는 그의 가족만이라도 인접국으로 피신시키려 했으나 부인 김 씨도 “죽더라도 남편과 함께 여기서 죽겠다”며 버텼다.

내전이 끝난 뒤 병원은 또 다른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200만 명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환자로 추정되는 에티오피아에서 에이즈 감염을 무릅쓰고 매일 15건 정도 외과수술을 했다.

유 박사는 아디스아바바국립대 부속병원에서 명예교수로 활동하며 의료 인력을 양성하기도 했다.

또 언청이 무료수술,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부인 돕기에 앞장서 대통령 수교훈장 숙정상, 올해의 서울인상 등을 받았다.

유 박사는 “이곳이 나를 가장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자리를 지키다보니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그동안 불평 없이 함께해 준 가족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2년에 한 번씩 14차례나 정부와 계약을 연장한 끝에 맞은 정년퇴임이었다. 그는 “가족 같은 의료진과 환자를 두고 떠나는 것이 무척 망설여졌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는 “그동안 에티오피아에 2개의 의과대학이 생겼고 외과 전문의가 200여 명이 배출된 만큼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정부와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당부했다.

“50년 전의 아시아와 비슷한 수준인 아프리카 지역은 50년 후에는 분명 우리 후손의 삶의 터요, 외교와 무역의 터가 될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를 돕는 일은 50년 후 세계무대의 주역이 될 우리 후손을 위한 외교의 시작인 만큼 더 많은 이들이 앞장서 주길 바랍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