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女性열사 南慈賢을 아십니까]魂, 중국 떠돈다

  • 입력 2005년 7월 2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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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남자현(南慈賢·1872∼1933·사진) 열사의 중국 하얼빈(哈爾濱) 묘지가 47년 전 콘크리트 바닥에 묻혀 버린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강위원(姜衛遠·55·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연구팀 자격으로 최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일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26일 강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1958년 하얼빈 시 난강(南崗) 외국인묘지 일대에 문화공원을 조성하면서 연고가 밝혀지지 않은 조선인 묘를 모두 없앴다. 남 열사는 1933년 숨진 뒤 하얼빈 시 난강 구 둥다즈(東大直) 가 1호에 있는 난강 외국인묘지의 조선인 묘역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당시 연고가 있는 조선인 무덤은 이곳에서 20km 떨어진 황산(皇山)묘지에 이장됐는데 남 열사의 묘는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얼빈의 중국동포 향토사학자 서명훈(74) 씨는 “현재의 문화공원 안 어린이 놀이공원 끝쪽에 남 열사의 묘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밑에 열사의 묘가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남자현 열사의 묘가 있던 중국 하얼빈 ‘난강 외국인묘지’에 들어선 문화공원. 1958년 공원 조성 때 남 열사의 묘가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제공 강위원 경일대 교수

현장을 답사한 강 교수는 “당시 조선인 묘역과 나란히 있던 소련군의 묘지는 지금도 담 안에 잘 보존돼 있지만 조선인 묘지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경북 영양 출신인 남 열사는 의병이던 남편이 일본군과 싸우다 숨지자 1919년 만주로 건너간 뒤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등에서 크게 활약했다. 무장단체 통합과 군자금 조달, 안창호(安昌浩) 선생 석방 운동 등에 앞장서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렸다.

1932년 국제연맹(유엔의 전신) 조사단이 하얼빈에 왔을 때 손가락을 잘라 조사단에 보내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일은 유명하다. 그는 1933년 8월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 주재 일본대사를 암살하기 위해 하얼빈에 숨어들었다가 체포된 뒤 “원수의 밥은 먹을 수 없다”며 단식투쟁을 하다 15일 만에 61세로 숨을 거뒀다.

1962년 여성 독립운동가로서는 최고 훈장인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정부는 1967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41번)에 남 열사의 가묘를 만들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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