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TV리뷰]약한 신데렐라 vs 당당한 신데렐라

  • 입력 2005년 7월 2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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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인기 드라마 ‘파리의 연인’과 ‘내 이름은 김삼순’은 ‘캔디+신데렐라’를 합친 ‘캔디렐라’가 백마 탄 왕자님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하지만 1년 전 방영된 ‘파리의 연인’과 최근 종영된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시청자들이 본 신데렐라의 환상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1’에서 보듯 강태영은 노는 물이 다른 한기주의 주변 인물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없다. 그의 배경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고 더구나 한기주의 가족 앞에서 한없이 약한 존재가 된다. 강태영은 캔디적 속성을 갖고 있지만 백마 탄 왕자 품에 안겨야 하는 신데렐라임에는 틀림없다. ‘강태영 신데렐라’는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왕자의 질서에 편입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러나 삼순이는 딴판이다.

‘#2’처럼 삼순이는 신데렐라지만 왕자에 기대지 않고 대신 왕자를 자신의 위치로 끌어내린다. 왕자라고 해서 특별할 게 없고 ‘철없는 놈’ 또는 ‘부모 잘 만나서 호강하는 주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왕자가 하향 평준화되는 셈이다.

왕자는 삼순을 구해 주는 강자가 아니라 외려 약자로 전락한다. 왕자는 장모에게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술버릇 테스트를 받고 노래방에서 놀아 줘야 한다. 삼순이 가족은 왕자에게 주눅들기는커녕 자신들의 문화로 왕자를 끌어들인다.

물론 ‘신데렐라의 환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파리의 연인’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비현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결말을 강태영의 소설 속 이야기로 끝내려고 했다가 시청자의 거센 항의에 일부 바꿨다. 시청자는 ‘소설의 허구’라는 현실적 결말보단 환상을 원한 것이다.

삼순이는 왕자를 내 품에 끌어안는, 당당하다면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코드로 신데렐라적 환상을 소비했다. 두 사람이 무리 없이 맺어지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 결말임에도 시청자들이 열광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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