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KBS‘퀴즈 대한민국’최고령 퀴즈영웅 박영자 씨

  • 입력 2005년 7월 2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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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 5기 끝에 퀴즈영웅에 등극한 박영자 씨는 “모든 도전은 그 과정만으로도 아름다운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내년부터 대학입시에 도전할 계획인데 만약 큰아들이 결혼해 손자를 낳아 길러 달라고 하면 고민이 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인천〓변영욱 기자
4전 5기 끝에 퀴즈영웅에 등극한 박영자 씨는 “모든 도전은 그 과정만으로도 아름다운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내년부터 대학입시에 도전할 계획인데 만약 큰아들이 결혼해 손자를 낳아 길러 달라고 하면 고민이 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인천〓변영욱 기자
17일 방송된 KBS 1TV ‘퀴즈 대한민국’에서 우승상금 5600만 원을 거머쥐며 역대 최고령 퀴즈영웅에 올라 화제를 낳은 박영자(55) 씨.

“어휴,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며 수줍은 표정으로 26일 인터뷰에 응한 박 씨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였다.

하지만 그의 우승은 조기퇴직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잔뜩 기가 죽은 한국의 중년층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직장을 다니며 졸업한 야간상고 학력이 전부인 그가 명문대 출신의 젊은 경쟁자들과 당당히 실력을 겨뤄 모두 물리쳤다.

그는 왜 늦은 나이에 이런 도전을 시작했을까.

“2003년 1월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포기하고 취업공부를 시작하던 작은아들(27)이 문득 지쳐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퀴즈영웅에, 너는 취업에 도전해 누가 먼저 목표를 이루는지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서로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이었어요.”

그는 작은아들이 보던 상식 책을 빌려 함께 공부하며 퀴즈대회 준비를 했다.

가난 때문에 배움을 계속하지 못한 데 대한 미련을 책 읽기로 달랬던 그는 상식에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책을 펴고 보니 잘 모르는 단어와 지식이 너무 많았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식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해 반드시 노트와 수첩 등에 꼼꼼하게 메모한 뒤 복습했다. 이렇게 정리한 노트와 수첩이 50권을 넘는다.

그러나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작은아들이 내기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공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한 것.

“내기가 끝났으니 퀴즈대회를 포기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와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동안 4번이나 예선에서 떨어진 것도 오기를 발동하게 했습니다.”

그는 다시 퀴즈대회를 준비했고, 결국 2년 6개월 만에 도전에 성공했다.

6·25전쟁으로 인천에 피란온 친정아버지(작고)가 동아일보 애독자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신문을 보는 습관을 길렀다는 그는 “시사성이 강한 문제들은 신문기사를 꼼꼼하게 스크랩한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지은 지 15년이 넘은 24평짜리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는 ‘고난을 이겨낸 억척 주부’로 통한다.

1988년 남편(63)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 졸지에 실업자가 되면서 평온했던 그의 가정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남편이 몰래 친구에게 서 준 빚보증도 문제가 돼 모든 부동산을 처분해 살림은 갈수록 기울었다. 그가 생업전선에 나서야 했다. 가정을 이렇게 만든 남편이 미웠다.

삶이 힘들어 남몰래 숱하게 눈물도 흘렸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두 아들을 바라보며 그는 매번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과외는커녕 그 흔한 학원도 못 보냈어요. 그냥 제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분위기를 체득한 것 같아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두 아들이 사춘기를 겪으며 방황할 만도 했지만 잘 자라주었다.

피아노를 잘 쳐 음대 진학을 꿈꾸었던 큰아들(30)은 집안 사정을 고려해 경인교대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작은아들은 한국마사회에서 근무 중이다.

남편도 지난해 한 중소기업 관리담당으로 취직해 그는 올해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왔다.

“인생에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면 훗날 웃으면서 얘기할 날이 꼭 옵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말이지요.”

9년 전 간병인을 시작할 때 구입한 휴대전화를 아직도 들고 다니는 그에게 상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암으로 투병 중인 친구의 치료비에 사용하고, 돈이 남으면 음대 진학을 포기한 뒤 교사가 된 큰아들에게 소형 승용차를 사주고 싶다”고 말했다.

퀴즈를 풀기에 앞서 시청자들에게 당당한 모습으로 “내 나이 쉰다섯, 내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부터”라고 말했던 그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았다.

“많이 늦었지만 내년에는 수능시험을 본 뒤 대학에 들어가 사학을 전공할 계획이에요. 제가 역사에 관심이 많거든요. 기회가 닿으면 신학도 공부하고 싶습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 박영자 씨는

△1950년 황해도 해주 출생

△1966년 인천여중 졸업

△1969년 인천기독병원 간호조무사 로 근무하며 옛 항도여상 졸업

△1974년 남편과 결혼 후 슬하에 2남

△2003년 퀴즈 대한민국 도전

△2005년 7월 KBS 역대 최고령 퀴즈 영웅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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