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퇴임후 대통령이 사는 법

  • 입력 2005년 7월 2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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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타계한 에드워드 히스 전 영국 총리는 참 특이하게 살았다.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는 내각제 정치제도에서 총리(1970∼74년)를 지낸 뒤에도 다시 27년간을 하원의원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총리를 지낸 사람은 여왕에게서 작위를 받아 임명되거나 또는 세습되는 상원의원이 되는 게 일반적인 관례다. 하지만 히스 전 총리는 이를 거부하고 지역구 선출직인 하원의원이 되는 걸 고집했다. 권력에 대한 미련과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직접 국민의 선택을 받아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과연 어떻게 살아갈까. 2008년 2월 퇴임할 때 노 대통령은 62세이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쉽게 재취업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한창때이다.

아직 임기가 절반 이상이나 남은 현직 대통령의 퇴임 후에 대해 얘기한다는 게 사실 예의가 아닌 줄 안다. 하지만 최근 제기되는 연정(聯政)론이나 개헌론과 관련해 여권의 설명과는 다르게 노 대통령이 자신의 퇴임 후를 대비하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번쯤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퇴임 후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두 번이다. 한 번은 진심이 밴 말이었고, 다른 한 번은 농담조였다.

5월 21일 주말을 맞아 충북 단양군의 한드미 마을을 방문했을 때 주민들이 있는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제 욕심에 은퇴하면 내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갈 수 있는 농촌 시골에 가서 터 잡고 살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퇴임 후 서울을 떠나 사는 사람이 없는 터라 이 말은 참으로 신선하게 들렸다. 또한 진심으로 받아들여졌다.

농담조로 퇴임 후 구상을 언급한 것은 제헌절인 7월 17일이었다. 이날 노 대통령은 국회의장 공관에서 5부 요인과 만찬을 하며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의장 공관이 청와대 관저보다 큰 것 같다. 나도 나중에 (국회의장에) 도전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선수(選數·국회의원 당선 횟수)가 모자라지 않느냐”고 하자, 노 대통령은 “나도 벌써 재선이니 세 번만 더하면 5선이 된다”고 대꾸했다.

초대를 받아 간 자리에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는 노 대통령 특유의 유머 감각이 발동된 말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말이 전해지자 일부 야권에서는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시 연정론이 정국을 달구던 때라 ‘혹시 퇴임 후에도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평소의 생각이 은연중에 표출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에 어떻게 살아갈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농촌으로 돌아가 살 수도 있고, 지역구에 출마하거나 비례대표로 다시 의원이 될 수도 있다. 변호사로 살아갈 수도 있고, ‘평생의 소원’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지금의 정치 행위가 퇴임 후를 겨냥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듯하다. 또 실제 퇴임 후 권력에 미련을 갖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자리는 피해야 할 것이다. 진심은 늘 나중에 확인되는 법이다.

이진녕 정치부장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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