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쿠” 故이구씨 전부인 먼발치서 영결식 지켜봐

  • 입력 2005년 7월 2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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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멀록 여사가 24일 낮 서울 종묘공원 맞은편 인도에서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전 남편 이구 씨의 노제를 지켜보는 장면이 TV카메라에 잡혔다. YTN TV 화면 촬영
줄리아 멀록 여사가 24일 낮 서울 종묘공원 맞은편 인도에서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전 남편 이구 씨의 노제를 지켜보는 장면이 TV카메라에 잡혔다. YTN TV 화면 촬영
“살아서 꼭 한번 만나고 싶다”던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끝내 외면하기는 힘들었나 보다.

조선 왕조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李玖·1931∼2005) 씨의 영결식이 있던 24일, 고인의 전 부인 줄리아 멀록(82) 여사는 서울 종묘공원 맞은편 인도에서 보행보조기에 의지한 채 노제(路祭)를 위해 멈춰 선 운구행렬 속의 대여(大輿·국상에 사용하는 큰 가마)를 지켜봤다.

‘저곳에 쿠(Ku·고인의 영문 이름 ‘Lee Ku’)가 누워 있겠지.’

1982년 두 사람이 이혼한 후 처음이자 마지막 해후였다. 줄리아 여사는 시민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언론사의 취재 카메라가 따라붙자 황급히 차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줄리아 여사의 이날 외출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은 “온다면 굳이 막지는 않겠지만 정식으로 초청은 할 수 없다”며 영결식에 줄리아 여사를 청하지 않았다.

영결식 전날까지도 줄리아 여사는 “내가 남편의 장례식에 가면 괜히 언론보도의 초점만 흐려진다”며 지인들에게 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줄리아 여사와 이 씨에 관한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인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오전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 그녀는 고인의 빈청(殯廳)이 마련된 창덕궁 근처에 사는 오랜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집안에서 운구행렬을 지켜보던 줄리아 여사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친구의 도움을 받아 차를 타고 현장 부근으로 갔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아스팔트가 녹을 것만 같은 폭염에도 불구하고 목에 녹색 스카프를 두르고 모자를 눈 위까지 푹 눌러쓴 모습이었다.

지인들에 따르면 줄리아 여사는 17일 이 씨의 별세 소식을 듣자마자 현재 머물고 있는 서울 강남의 거처에 고인의 젊었을 때 사진으로 만든 영정을 놓은 간이 분향소를 차려 고인을 추모했다고 한다.

사랑했던 이의 마지막 모습을 먼발치에서나마 지켜본 줄리아 여사는 이번 주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 하와이로 떠날 예정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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