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경찰 집앞부터 미행했다… 메네제스씨 오인사살하기까지

  • 입력 2005년 7월 26일 03시 08분


코멘트
제안 샤를레스 데 메네제스(27) 씨는 22일 오전 9시 반경 집을 나섰다.

고장난 화재경보기를 고쳐 달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런던 북부로 가는 길이었다. 그가 사촌들과 함께 사는 집은 런던 남부 툴스 힐에 있는 영세민용 연립주택.

영국 경찰은 전날 7·21 테러범이 남긴 폭발물 꾸러미에서 이 건물 주소가 적힌 서류를 발견했다. 그것이 비극의 발단이었다. 연립주택을 감시하던 경찰은 메네제스 씨가 건물에서 나오자 즉시 미행을 시작했다. 까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아시아계로 착각한 것.

메네제스 씨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던 것도 의혹을 샀다. 친지들은 “여름이지만 영국은 브라질에 비하면 쌀쌀하기 때문에 두꺼운 옷을 입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하철역으로 가는 2번 버스에 올랐다. 미행하던 경찰들은 순간 당황했다. 버스에 타자마자 폭탄 테러를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단 함께 탔다.

메네제스 씨가 스톡웰 지하철역에서 내리는 순간 버스 안의 사복 경관은 대기 중이던 무장 경관들에게 연락했다.

“잠바 안에 폭탄이 들어 있을지 모르니 체포에 실패하면 반드시 사살하라”는 메시지가 전달됐다.

오전 9시 56분경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던 그는 사복 경관의 저지를 받았다. 큰소리로 “무장 경찰이다.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명령에 불응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는 것.

그는 검표대를 뛰어 넘어 막 플랫폼에 들어온 지하철 칸에 뛰어들었고 뒤쫓아 온 무장 경관 2명이 그를 바닥에 눕혔다. 그 사이 다른 1명이 총을 꺼내 머리 뒤쪽에 5발을 연쇄적으로 발사했다.

메네제스 씨의 친구들은 그가 최근 스톡웰 역 앞에서 강도에게 돈을 털린 적이 있어 강도가 접근하는 줄 알고 필사적으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사촌도 “브라질에선 경찰의 정지 명령을 거역해 사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그런 현실에 익숙해 있던 동생이 경찰의 명령임을 알면서도 도망쳤을 리 없다”고 말했다.

메네제스 씨는 전기 기술을 익힌 뒤 돈을 벌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꼬박꼬박 집에 송금했고 매주 3번씩 전화를 걸어 부모를 안심시켰다. 부모에게 이런 얘기도 했다.

“영국엔 폭력적인 분위기가 없습니다.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심지어 경찰들도 총을 갖고 다니지 않아요.”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