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황석영-‘황진이’ 홍석중 “손잡고 책 냅시다”

  • 입력 2005년 7월 26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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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북한 평양 고려호텔 소극장에서 만난 ‘장길산’의 황석영 씨(오른쪽)와 ‘황진이’의 홍석중 씨가 공동창작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평양=공동취재단
21일 북한 평양 고려호텔 소극장에서 만난 ‘장길산’의 황석영 씨(오른쪽)와 ‘황진이’의 홍석중 씨가 공동창작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평양=공동취재단
20∼25일 평양과 백두산 등지에서 열린 남북 민족작가대회가 25일 폐막됐다. 남측 대표단 고은(高銀) 단장은 폐막 기자회견에서 “2차 민족작가대회를 내년 중 서울이나 광주에서 열기 위해 북측과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회 기간 중 남한의 황석영(62) 씨와 북한의 홍석중(64) 씨가 만나 남북 문학 교류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1989년 황 씨가 방북했을 때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001년 평양 8·15 범민족대회에 이어 21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다시 만났다. 두 살 차이인 두 사람은 서로 말을 놓았으며 앞으로 함께 작품을 써서 한 권의 책을 펴내기로 약속했다. 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 내용.

▽황석영=나는 1950년대에 누나들이 (홍 씨의 할아버지인) 벽초 홍명희 선생의 소설 ‘임꺽정’을 빌려오면 어깨 너머로 읽으며 자랐다. 홍 선생의 문체에서 우리말의 진정한 맛을 공부했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장길산’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를 만났는데, “내 부모와 나는 아프리카에서 자랐다. 나는 조국이 없고 모국어인 프랑스어가 내 조국이다”라고 하더라. 나는 분단된 조국의 어느 한 쪽에도 속하지 않은 세계 시민이지만 나 역시 내 조국은 내 모국어다. 지난해 런던에 체류하던 중 홍 형이 ‘황진이’로 남쪽의 출판사 창비가 주관하는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통쾌했다. 그것은 문학의 힘이 분단의 높은 벽을 뚫은 일대 사변(사건)이었다.

▽홍석중=황 형을 만나 새삼 깨달은 게 있다. 우리는 절대 분리돼서 못 산다. ‘임꺽정’이 ‘장길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는 ‘장길산’ 애독자다. 머리맡에 늘 꽂아두고 순서 없이 꺼내 읽는다. 어설픈데도 있지만 매번 감탄한다. 그런데 ‘장길산’과 내 소설이 어딘지 모르게 닮은 데가 있다. 그러니까 서로 보완하는 거다. 우리 문학의 뿌리는 같은 거니까.

▽황=우리 문학은 하나다. 세월이 흘러 통일이 된 뒤 우리 후세는 ‘남과 북을 철통같이 갈라 놓았는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라면서 깜짝 놀랄 거다. 철통같은 분단의 벽 밑으로 소통이 있었던 것이다.

▽홍=‘황진이’에 대해 남쪽에서 여러 평가가 나왔는데 대부분 분단을 기정사실화한 것이 못마땅했다. 내 소설이 우리말을 잘 구사했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16년 전에 약속했던 거지만 우리 둘이 같이 작품을 쓰자. 짧든 길든 가리지 말자. 이젠 때가 됐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았고 아픔도 같이 느껴 왔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늘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나.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같이 쓰자.

▽황=참 좋은 생각이다. 추진하자. 우리 둘이 소설을 번갈아 이어가며 쓸 수도 있겠다. 우리 후배들이 남북을 오가면서 서로의 원고를 전해 주고…. 정말 멋진 일이다.

▽홍=황 형이 16년 전 북에 왔다가 ‘북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을 썼다. 그만큼 분단의 벽이 높았던 것이다. 남쪽에서는 북쪽 사람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지 않은가. 그때에 비하면 지금 남과 북을 서로 샅샅이 알고 있다. 요즘 책 나오는 걸 보면 분단을 못 느낀다. 북에서 ‘황진이’가 나온 지 한 달 반 만에 남쪽 평론가로부터 연락이 올 정도였다.

▽황=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기 작품을 제품으로 팔기 위해 쓰는 작가는 거의 없다. 작가의 본질은 같다. 홍석중과 황석영은 같다. 우리 민족에게는 천혜의 낙관주의가 있다. 우리 민족이 통일을 이룩하는 데 문학의 역할이 분명 있다.

평양=권기태 기자 kkt@donga.com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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