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거래’ 관련자들 “내가 입열면 나라들썩”…결국 허언

  • 입력 2005년 7월 26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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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팀인 미림팀 팀장이었던 공모 씨가 24일 일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입을 열면 안 다칠 언론사가 없다”고 말했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당사자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해서 관심을 끌었지만 실제 ‘폭탄선언’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전두환(全斗煥) 정권 시절 안기부장을 지낸 장세동(張世東) 씨가 대표적.

전 씨가 퇴임한 뒤 세 번이나 구속된 그는 국회 5공 청산 특위 청문회 당시 “내가 입을 열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큰소리쳐 의원들을 당황케 했다.

전 씨 역시 이 청문회에 출석했을 때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해) 입을 열면 과거 청산의 마무리보다는 시작이 된다는 점을 의원들이나 국민들이 이해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은 언론과의 옥중 인터뷰에서 “정동영(鄭東泳) 의장의 2000년 총선 및 경선자금 내용을 공개하면 그는 도덕적으로 죽는다”고 털어놓았다.

노태우(盧泰愚)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朴哲彦) 씨와 정대철(鄭大哲) 전 민주당 대표도 검찰에 구속된 뒤 자신이 정치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알고 있음을 흘렸다.

정치인만이 아니다. 정태수(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은 1991년 수서지구 특혜분양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비자금 행방과 관련해) 내가 입을 열면 나라가 들썩거린다”며 진술을 거부했다.

5공 때 어음사기 사건으로 구속된 장영자(張玲子) 씨는 1989년 구치소에서 국회 5공 특위 의원들에게 “정신만 차리면 털어놓을 말은 많다”고 말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3대 게이트’(정현준, 진승현, 이용호)의 당사자 모두 검찰 조사나 재판 과정에서 하나같이 ‘폭탄선언’을 예고했다.

정현준(鄭炫埈) 씨는 “내 돈 100만 원의 행방까지 밝혀 장난친 사람들을 모두 폭로하겠다. 내 펀드 가입자의 면면을 보면 세상이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된 당사자들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밝힌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와 같은 ‘협박성’ 발언은 세인의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부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오석홍(吳錫泓·행정학)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형 사건 관련자들은 남을 공격하기보다는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자기 보호 심리에 몰려 이런 발언을 한다”며 “실제 폭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도 있지만 원래 허풍에 그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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