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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임규진]‘신뢰의 힘’ 趙남준 사장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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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임규진]‘신뢰의 힘’ 趙남준 사장의 경우

입력 2005-07-25 03:06수정 2009-10-0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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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23년째인 중견 인테리어 시공업체 ‘풍진아이디’는 캐리비안베이, 씨티뱅크 등의 공사를 따내며 급성장했다. 그러다가 중국 현지법인의 영업 부진 등으로 자금난에 빠져 올해 1월 부도를 냈다. 하지만 240여 하청업체들이 풍사모(풍진아이디를 사랑하는 업체들의 모임)까지 만들어 모기업 살리기에 나섬으로써 회생(回生)의 길로 접어들었다. 협력업체들은 풍진아이디로부터 받을 돈 200억 원의 절반을 탕감해 주고 잔액을 출자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지난달 말 화의(和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중소기협중앙회는 ‘중소 하청기업의 절반 이상이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사업할 의욕을 잃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낸 바 있다. 풍진아이디의 하청업체들도 이런 처지였다면 모기업의 부도를 고소하게 여겼을지 모른다. 협력업체들이 그와는 정반대로 ‘풍사모의 힘’을 보여준 데 대해 풍진아이디 조남준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천성적으로 누구한테 욕먹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구두(口頭)약속이라도 꼭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점을 협력업체들이 믿어준 것 같습니다.”

협력업체 대표인 권영택 자연데코 사장에게 모기업 살리기에 열성적인 이유를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조 사장은 하청업체와의 약속을 대부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조 사장은 협력업체들에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를 약속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다. 협력업체와의 간담회에서 한 하청회사 사장이 공사 정산금 지불 문제를 꺼냈다. “공사가 마무리됐는데 (풍진아이디) 현장 소장이 부실(不實)을 문제 삼아 정산금 4억 원의 10%인 4000만 원을 깎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모기업과 협력회사 간에 이런 분쟁이 적지 않다. 그 과정에서 모기업의 횡포와 하청업체의 앙심이 교차되기 쉽다. 모회사가 부실공사를 내세워 정산금을 깎으려 하는데 하청업체가 수용하지 않고 버티면 아예 정산금 지불이 미뤄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하청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깎인 정산금’에 굴복해야 하는 경우다.

조 사장은 3억6000만 원을 우선 지급하도록 조치했다. 그러고 나서 공사에 문제가 있는지를 하청업체와 따지도록 했다. 하청업체에 공정한 소명기회를 준 것이다.

물론 조 사장이 자선사업가는 아니다. 회사 이익의 극대화가 경영목표다. 다만 법적 책임이 없더라도 묵시적인 계약을 지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기업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믿음을 잃게 돼 결국 손해라는 생각이었다. 오랜 거래에서 신용과 명예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신조였다.

풍진아이디의 완전한 재기(再起) 여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조 사장이 밝힌 새 각오의 키워드는 ‘신뢰 회복’이다.

“앞으로 협력업체와 약속한 수익 위주 경영을 철저히 지켜나가겠습니다.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부도를 냄으로써 까먹은 신뢰를 되찾는 데 남은 인생을 걸겠습니다.”

신뢰는 기업에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먹고산다. 그런 점에서 정책의 위기, 경제의 위기는 상당 부분 ‘말과 행동이 다른 데서 오는’ 신뢰의 위기라 할 것이다.

임규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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