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우린 아날로그에 푹빠져 산다”

  • 입력 2005년 7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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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LP숍에서 LP를 고르는 음악팬들. 이들은 “LP는 제작한 사람의 정성에 따라 음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제작 상태만 훑어보아도 음질을 대충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중고 LP숍에서 LP를 고르는 음악팬들. 이들은 “LP는 제작한 사람의 정성에 따라 음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제작 상태만 훑어보아도 음질을 대충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래와 영상이, 매혹과 감동이 0과 1의 부호로 환원되는 디지털 세상.

그속에서도 사라져 가는 아날로그의 골수팬들이 존재한다.

렌즈도 없는 사진기로 세상을 찍고, 잡음을 피할 수 없는 LP 레코드에서 소리의 정수를 발견한다.

“디지털에는 없는 ‘손맛’과 물성(物性)이 있다.

쏟는 정성만큼 반드시 보답하고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도 안겨준다.”

이들이 말하는 아날로그 예찬론이다.》

○ 구식 카메라로 ‘감성’을 찍다

작은 구멍 하나가 렌즈의 기능을 대신하는 핀홀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원근감이 제거돼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사진 제공 핀홀아트

휴대전화 카메라도 700만 화소를 자랑하는 시대. 그러나 인화지와 수동 조작 카메라로도 모자라 ‘바늘구멍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이들이 있다. 1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 핀홀카메라 동호회 ‘핀홀아트’(www.pinholeart.com). 렌즈 대신 바늘구멍을 통해서 물체의 영상을 필름에 잡아낸다.

동호회 운영자 박강우(38) 씨는 “렌즈가 없기 때문에 자연광을 그대로 받아 사진에서 따뜻한 느낌이 우러난다”며 “원근감이 사라진 것처럼 표현되는 것도 핀홀 카메라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구 소련에서 첩보용으로 제작된 완전 수동 ‘로모 카메라’도 누리꾼(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체형이라 렌즈 교환이 불가능하지만 가운데가 밝고 테두리 쪽이 어둡게 표현돼 깊은 느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특징. 인터넷 다음 ‘로모 카페’(http://cafe.daum.net/lomolife)에서만 3만 명에 가까운 회원이 활동 중이다.

○ LP(Long Play), 오래 돌아라

CD 한 장이 MP3 파일로 변환돼 순식간에 시공간을 가르는 오늘날. 그러나 서울 중구 회현동 회현지하상가에서는 중고 LP점 13개가 여전히 성업 중이다.

이곳에서 LP숍 ‘클림트’를 운영하는 김세환(45) 대표는 “최근에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보다는 음악이 좋아서 숍을 운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CD처럼 음반을 꺼내자마자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바늘의 무게를 조정하고, 턴테이블의 수평에 신경 쓰고, 음반의 먼지를 닦는 작업이 경건한 제의(祭儀)이면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라는 것.

최근 국내에서 LP 생산이 완전히 단종되면서 LP는 ‘문화재’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됐다. “1950∼60년에 나온 초판(볼록면 형태의 모반(母盤)으로 처음 찍어낸 판)들은 100만 원 가까이 값이 나가죠. 음반의 역사성과 희소성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격이 매겨지는 것도 매력 중 하나입니다.”

○ 글자의 무게를 느낀다, 활판인쇄

경기 파주출판문화단지에는 2000년 서울 용산에서 이전해 온 국내에서 마지막 남은 활판인쇄소인 ‘봉덕인쇄소’가 있다. 활판인쇄란 컴퓨터로 작업한 그래픽을 필름으로 뽑아서 인쇄하는 옵셋인쇄와 달리 올록볼록한 납 활자를 종이에 꾹꾹 눌러 찍어내는 전래의 인쇄기법을 말한다.

부친의 대를 이어 이 인쇄소를 운영 중인 조봉래(39) 사장은 “1년에 3, 4권을 찍는 수준이지만 가업인데다 고려시대 이후 활판 종주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버티고 있다는 생각에 활판인쇄를 버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활판인쇄 살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통나무 출판사 남호섭(45) 대표는 “활판에는 예전에 느끼던 책의 손맛이 살아있어 진중한 독서의 느낌을 살려준다”며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활판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 “원고지가 더 편리”

차병직(46·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변호사는 컴퓨터 대신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쓴다. e메일을 쓸 때도 그가 손으로 적은 것을 직원이 타이핑한다. “글을 쓰는 것은 손의 속도가 아니라 생각의 속도입니다. 오른손이 글을 쓰는 동안 왼손은 찻잔을 만지거나 머리를 매만지며 생각을 도와주죠.”

작가 중에서는 소설가 최인호 김훈 김주영 김성동 씨 등이 컴퓨터의 물결 속에 아직도 ‘종이에 펜’을 고집하고 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유경(미국 웨슬리언대 영문학과 3년) 이진영(고려대 경영학과 3년)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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