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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경애]아줌마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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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경애]아줌마가 세상을 바꾼다

입력 2005-07-25 03:06수정 2009-10-0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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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재산 상속에 있어서 혼인한 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한 가족법 개정이 있었다. 그 후 혼인한 여성이 ‘출가외인(出嫁外人)’으로 취급받는 전통이 소가족 내에서는 차차 소멸되고 있다. 하지만 ‘씨족 내에서의 차별’만은 굳건히 고수돼 왔는데 최근 대법원이 여성의 종회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함에 따라 이것도 사라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여성은 혼인 후에도 자신의 성(姓)을 지키기 때문에 서양 여성보다 지위가 높다는 주장도 한다. 혼인 후 출가외인으로 자신의 성이 큰 의미가 없었으나 이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찾았고 씨족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찾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종친회를 빙자하여 싸구려 그림을 비싼 값으로 팔아 수많은 사람들을 속였던 사기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개인주의가 팽배하지만 혈연에 대한 애착은 줄어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는 과정에서 학연, 지연과 함께 혈연의 연고주의는 통렬한 비판의 대상이 됐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합리한 연고주의는 많이 극복되었으나 연고 집단은 사회 자본으로 여전히 건재하다.

그러나 종친회 등 주요한 ‘사회자본’에서 여성은 여전히 배제되어 왔다. 일부 종중에서는 여성을 족보에 올리고 종친회는 여성을 회원으로 받아들이지만 주변적 역할에 머무르고 있을 뿐, 종중의 시제 등 주요 행사에는 배제되고 있다.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이후 여성운동은 ‘세상과 사회의 중심이 되자’(Mainstreaming)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고 있고 성공한 여성들이 회자되지만, 우리 사회에서 주요한 힘의 근간이 되는 ‘연고 집단’이 가부장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에 ‘사회자본’이 적은 여성이 사회 중심으로 진출하는 데 상당한 한계를 안고 있다. 이번 소송은 경제적 권리 찾기에서부터 비롯됐지만 연고 집단에 여성이 적극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 이번 판결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부장적인 조직인 종중의 남성들도 세상이 변했고 따라서 자신도 변화해야 함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저출산 시대에 여성을 종중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종중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번 소송을 이끌어 온 여성들은 이제 종중과 화해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종중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다면 모를까 ‘종회원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시제, 족보 제작 등 종회원의 각종 의무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종중도 이들에게 종중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줘야 한다. 그것이 대법원 판결의 취지이며 이 과정에서 소송하며 쌓인 앙금을 풀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래야만 “그들이 이번 일로 문중을 빛냈으며 앞으로도 종중의 힘이 될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을 얻어낸 것은 여성운동가도 여성학자도 여성정치인도 아닌 ‘아줌마들의 힘’이었다. 남성 가족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받았으며 하급심에서 연속해서 패소하는 좌절을 겪기도 한 보통 아줌마들이 스스로 6년여의 오랜 기간 동안 싸워서 얻어낸 승리였다.

이 승리는 여성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또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 이번 소송을 통해서 여성의 권리의식이 여성운동가나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여성들의 의식과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이 확인됐다.

“앞으로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용감한 아줌마들, 그 약속이 지켜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김경애 동덕여대 교수·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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