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이천공장 이문규 반장 “좋은제품이 중요”

  • 입력 2005년 7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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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자존심, 한국의 대표 술 참진(眞) 이슬로(露).’

정문을 들어서니 가장 먼저 출고장의 대형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22일 경기 이천시에 있는 진로의 이천공장. 10만 평 부지에 연간 생산능력이 11억 병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증류주 공장이다. 국내 소주 생산량의 36%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제품 동(棟)으로 들어가니 소주병들이 움직이면서 나는 요란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이곳에서는 양조 동에서 나온 술을 병에 담고 마개와 상표 부착, 제품 포장까지의 공정이 이뤄진다.

제품실 이문규(李文珪·57) 반장을 만났다. ‘두꺼비’ 진로와 30년 8개월을 함께한 인물이다. 현장 직원 가운데 진로에 30년 이상 몸담은 이는 서너 명밖에 없다.

이 반장과 진로의 인연은 우연한 기회에 맺어졌다.

국립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74년 5월 제대한 뒤 ‘먹고살기 위해’ 음악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가슴에 이력서를 품고 헤매기를 6개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을 우연히 지나가다가 진로공장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봤다. 사원모집 공고였다. 당시 진로는 사업이 잘 돼 2교대에서 3교대할 인원을 뽑고 있었다.

“그때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회사에서 손하고 체격만 봤어요.”

그가 맡은 일은 소주 40병이 든 나무상자를 등에 지고 트럭에 싣거나 포장 수작업을 하는 단순 작업이었다. 하루 일당은 650원. 한 달에 2만 원(지금 돈으로 약 200만 원) 정도를 손에 쥐었다.

고생도 많이 했다. 신길동 공장은 상습 침수지역이어서 장마 때면 공장이 물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면 스티로폼을 보트 삼아 물속에 빠진 술병들을 건져냈다. 밤을 새워 가며 물에 불은 상표를 깨끗이 떼어 내고 다시 붙였다.

그는 1984년 지금의 이천공장으로 이주한 뒤부터는 가족을 신길동에 놔둔 채 21년간 혼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다. 2교대, 3교대로 저녁이나 새벽에 출근할 때가 많아 출퇴근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이천으로 이사할 수도 있었지만 “두 아이가 서울에서 공부하면 나을까 싶어 그냥 혼자 지내 왔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 씨는 1997년 반장으로 승진해 현장 직원들을 관리하고 있다. 30년간 한 우물을 판 그는 “진로가 다른 회사로 넘어간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1997년 부도가 났을 때 기가 막혔어요. 회사가 정말 잘나갔거든요. 제품도 인기 있었고 현장에서 생산능력도 극대화됐죠. 현장 직원들은 경영 쪽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아직도 그걸(부도가 난 사실) 인정 못해요.”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누가 주인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이제까지 해오던 만큼만 하면 됩니다. 위에서는 신제품 개발하고 우리는 좋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내보내면 되는 거죠.”

장인(匠人) 정신이 느껴졌다.

술은 어느 정도나 할까. 이 씨는 “하루에 두꺼비 한 병은 마신다”고 했다. 하루에 한 병이라면 30년이면 만 병이 넘는다.

“평생을 같이한 진로가 계속 국민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작업 현장으로 돌아갔다.

이천=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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