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한 재판’이 3년4개월이라니…

  • 입력 2005년 7월 2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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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김석진, 상고 기각.”

22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2호 법정.

주심 대법관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선고를 기다리던 전직 현대미포조선 노조 대의원 김석진(金錫鎭·45·사진) 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상고 기각 맞아? 진짜로?”

장기간의 ‘1인 시위’로 얼굴이 검게 그을린 그는 복직 확정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회사 동료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해고된 지 8년 3개월, 소송을 낸 지 5년 5개월, 대법원이 심리를 시작한 지 3년 4개월…. 김 씨는 1997년 4월 해고됐다. 설 연휴 근무 조정에 대해 상급자에게 무례하게 항의하고,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회사 측이 성과급을 삭감 지급했다”는 유인물 1500부를 노조원들에게 배포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이유였다.

김 씨는 해고 직후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라고 항의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법원에 해고무효 소송을 냈다. 1, 2심 모두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만 해고는 지나치다”고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3심인 대법원의 확정 판결은 더디기만 했다.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에서 양말을 팔아 생계를 꾸리던 그는 대법원 정문 앞에서 “빨리 재판을 끝내 달라”며 1인 시위와 단식 농성도 벌였다. 하지만 사건의 주심이었던 변재승(邊在承) 대법관이 2월 28일 정년퇴임하면서 확정 선고는 더 늦어졌다.

헌법 제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돼 있다. 또 민사소송법 199조는 대법원 판결은 상고 접수 후 5개월 이내에 판결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김 씨는 상고심에만 3년 4개월이 걸렸다.

김 씨는 다음 주 또다시 대법원 정문 앞에 선다. 재판에는 이겼지만 죽은 법이 되다시피 한 민사소송법 199조의 이행을 촉구하고 법원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1인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사람에겐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 권리를 침해받아 저와 가족이 당한 정신적, 물질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다시 나와서는 안 됩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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