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성호]의원연구단체가 바로 서야 할 이유

  • 입력 2005년 7월 2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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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취지를 잘 집행하지 못해 취지 자체가 욕을 먹는 경우가 있다. 요즘 세간의 비난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 연구모임들이 그렇다.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 운영하는 연구단체는 근래 수와 활동에서 크게 증가했고, 이러한 활성화는 정책능력을 갖춘 생산적 국회로의 진일보라고 높이 평가 받았다. 몇몇 학자나 시민단체는 국회 발전의 한 지표로 의원 연구단체의 증가를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의원 연구모임들에 대한 긍정적 시선은 구체적 예산집행 내용이 밝혀지며 갑자기 싸늘하게, 심지어 분개 어린 눈초리로 바뀌었다. 모일 때마다 값비싼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연구단체가 많았고, 식사비용으로 단란주점과 나이트클럽의 영수증이 제출되기도 했다. 한과선물세트를 사서 의원끼리 나눠 가진 경우도 있다. 들인 비용에 비해 성과는 너무 적어 1년에 보고서 한 권 내지 못한 연구모임도 부지기수이다. 물론 알뜰하게 살림하고 연구보고서를 충실하게 제출한 모범적 단체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질타 받아 마땅하다.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의원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의원 연구단체 자체를 매도하거나 냉소를 보내선 곤란하다. 의원들의 모임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연구모임 제도의 취지까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단순하고 유치하다. 싸잡아 비난하기에 앞서 취지를 재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중요성을 잘 살려야 한다는 건설적 인식이 퍼질 수 있다.

첫째로 의원 연구단체는 의원이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준다. 국정 전반의 수많은 사안을 다뤄야 하는 의원이 특정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갖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의원이 2년마다 상임위 소속을 바꾸는 상황에서는 특히 그렇다. 미국 의원처럼 수많은 전문보좌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연구단체 활동을 통해 각 의원이 특화된 전문성을 보강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두 번째 취지로 정책개발을 들 수 있다. 각 정당이나 행정부가 정책개발을 주도할 수도 있지만, 여야 의원이 섞여 있는 연구단체는 정파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책개발을 할 수 있고 국회가 행정부에 대한 의존성을 벗어나 최고입법기관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향후 신설될 가능성이 큰 입법지원처와 함께 각종 의원 연구단체는 정파성과 행정부 의존성을 극복한 정책개발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셋째 취지는 정책영역별로 의원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의원들은 너무 강한 정당 기율에 사로잡혀 경직된 정당대결 구도를 만들어 왔고, 이것이 한국 정치의 근원적 폐해로 작용했다. 각 의원 연구단체는 특정 분야별로 의원들이 여야를 가로지르는 정체성과 연대감을 쌓을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철저한 당 대 당 구도를 깨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너무 높은 정당 벽을 넘어 다양한 이익의 균형을 이뤄야 하는 대명제를 생각해 볼 때, 이 셋째 취지가 중요도에서 결코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취지들은 국회가 전문성과 자율성을 갖춘 생산적 입법부로 발돋움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그 취지들은 국회 전체뿐 아니라 개별 의원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주요 정책사안과 관련해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행정부 집행 과정을 예리하게 감시하는 일, 혹은 사회여론을 주도함으로써 의원이 개인적 공을 내세우는 데에도 연구단체 활동은 도움이 된다.

의원 연구단체들이 운영상의 잘못으로 위축된다면 국회의 거시적 발전뿐 아니라 의원들의 미시적 이익 도모도 타격을 받게 된다. 이런 인식하에 이번 논란이 의원들의 반성과 분발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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