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票心이 먼저” 건축허가 미뤄

  • 입력 2005년 7월 2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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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치단체장들이 ‘표심(票心)’을 지나치게 의식해 각종 인허가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바람에 주민들의 민원(民怨)이 불거지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엄연히 법과 규정상 내주게 돼 있는 민원을 불허하거나 아예 상위 자치단체에 떠넘기는 현상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는 행정심판이나 소송으로 이어져 행정력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뜨거운 감자’ 떠넘기기=부산시와 해운대구는 수영만 매립지의 개발에 대한 민간업자의 사업변경 제안(지구단위계획 변경안)에 대해 3년째 ‘핑퐁식’으로 미뤄왔다. 최근 시는 다시 관련 업무를 해운대구로 넘겼다.

민간업자는 아파트 500가구 이상을 짓겠다며 2003년부터 4차례에 걸쳐 지구단위 변경안을 냈다.

그러나 허남식(許南植) 부산시장과 배덕광(裵德光) 해운대구청장은 자칫 특혜 시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법에도 없는 불허’ 또 다른 위법=경북 영천시는 5월 김모(32) 씨가 화산면 암기리 야산에 992m² 규모의 화약저장시설을 세우겠다며 낸 허가 신청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렸다.

김 씨는 경찰청으로부터 화약시설 안전성 검사를 받아 ‘문제 없다’는 판단을 받았지만 영천시는 ‘주민 반발과 불안감 조성’을 이유로 개발허가를 거절한 것.

김 씨는 “안전성 검사를 통과하고 다른 불법 요소가 없는데도 자치단체가 이를 불허하는 것은 재량권 남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북도 관계자도 “법리를 중시하는 소송으로 가면 자치단체가 패할 가능성이 높다”며 “영천시가 법적 판단보다는 주민 표를 의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책사업인 경부고속철도사업의 14공구를 맡은 대우건설은 지난해 3월 부산 북구청(구청장 배상도·裵尙道)에 지하터널을 뚫기 위한 사전 작업의 하나로 그린벨트 해제 행위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북구청에서는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대를 이유로 1년 넘게 허가를 내주지 않다가 국책사업을 승인하지 않는 데 대한 따가운 여론에 밀려 4월에야 승인했다. 건설사는 1년 동안 막대한 재정적 피해를 보았다.

▽‘행정(심판)소송이 오히려 홀가분하다’=울산시장은 중구 태화동의 태화루 옛터에 38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 건설이 추진되자 법적인 하자가 없는데도 건립 불허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민간업자가 300억 원을 들여 사들인 이곳은 도시계획상 상업지역이어서 법적 하자가 없다.

울산시 측은 “차라리 행정소송으로 가서 이기면 허가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탓인지 기초단체가 민원소송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경남의 한 지방자치단체는 지난해 11월 김모 씨가 신청한 의료시설(장례식장) 신축허가를 교통소통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불허했다가 올해 3월 행정심판에서 패소했다.

이와 관련해 충남대 육동일(陸東一·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자치단체장에게 집중된 인허가 권한이 실무자에게 넘겨져 담당자의 의견이 존중돼야 하고, 지방의회의 감시와 견제 기능이 강화돼 자치단체장의 재량권 남용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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