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되살아난 盜聽 유령, 증폭되는 報道 공방

  • 입력 2005년 7월 22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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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김영삼 정권 기간에 비밀 도청(盜聽)팀을 가동해 정계 재계 언론계 인사들의 식사나 술자리 대화를 도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첩보영화에서 보던, 적(敵)을 상대로 한 도청 수법이 ‘문민(文民)정부’에서 국민을 상대로 행해진 것이다. 민주화(民主化) 정권의 가면(假面) 뒤에서 벌인 음습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도청된 내용은 극소수 안기부 관계자를 거쳐 청와대에 보고됐고, 청와대는 이 정보를 여야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사정(司正) 자료로 활용했다고 한다. 기업이나 언론에 대해서는 협박용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다. 국정원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로써 충분할지 의문이다. ‘조직의 계속성 측면에서’ 조사의 대상이 돼야 할 도청 당사자가 조사의 주체로 나선다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자칫하면 축소 은폐 의혹만 키울 수 있다.

그동안 정권이 두 번 바뀌었지만 도청에 대한 공포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모두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도청은 이제 없다”고 했지만 이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번 기회에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의 잔존 의혹까지 말끔히 씻어 내야 한다.

도청 파문의 발단이 된 ‘1997년 불법 도청 테이프’를 MBC가 입수했고, 일부 언론이 관련 내용을 보도하자 도청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홍석현(주미 대사) 전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은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냈다. 법원은 신청 내용의 일부를 수용했지만 보도 공방은 이어질 전망이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공익적 측면과 통신비밀보호법 저촉 측면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도청 테이프를 통해 드러난 것으로 알려진 정경유착 대화 의혹도 해소돼야 한다. 대선 후보 진영에 대한 자금 제공 문제가 거론됐고, 중앙 일간지 사주가 한 당사자라고 한다면 ‘언론의 중립성 훼손’도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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