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세습에 신분상승 높은 벽 중남미의 비애

  • 입력 2005년 7월 2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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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의 대표적 국가인 멕시코의 대도시 테우아칸 변두리에 있는 한 중학교 교실. 담임이 학급 학생 25명에게 물었다. “부모님 직업을 그대로 이어받을 사람 있나요?” 학생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아니요. 없어요.”》

▽신분상승 높은 벽=학생들 부모의 직업은 대부분 벽돌공이나 공장 노동자다. 학생들이 더 나은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신분 이동이 마음먹은 것만큼 쉽지는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0일 전했다.

테우아칸에 사는 그리셀다 마르티네스(여) 씨는 실내장식가가 꿈이다. 하지만 주석 세공업자인 아버지의 벌이로는 뒷받침 받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결혼도 미뤄 가며 사무보조 일로 밑천을 만들려 하지만 벌써 서른넷이 됐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주개발은행 조사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블루칼라의 자녀가 화이트칼라가 될 가능성은 10%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는 그 가능성이 30%에 이른다.

생수, 양계, 양돈업을 하는 토착 부자들은 자가용 비행기로 주말여행을 떠나고 스포츠카를 몬다. 옥수수로 토르티야(전병)를 만들어 집집마다 팔고 다니는 농민들은 스포츠카가 나타나면 서둘러 갓길로 피한다. 부자건 빈자건 이들의 직업은 3, 4세대씩 대물림된다.

▽교육기회 ‘부익부 빈익빈’=멕시코에서 2위 규모의 양계업을 하는 구스타보 로메로 씨는 자녀들을 고급 사립학교에 보낸다. 학생들은 무장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통학하고 고속 인터넷통신은 물론 방과 후 각종 특기활동을 받는다.

야신토 우에르타 씨는 낮에는 로메로 씨 농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집에서 케이크를 만들어 팔지만 일주일에 고작 90달러(약 9만 원)를 번다. 우에르타 씨의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학교에는 컴퓨터조차 없다.

멕시코에서 소득기준으로 상위 20% 이내 부자의 자녀는 하위 20%의 자녀보다 8년 더 학교 공부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남미 국가들의 고교생 10명 중 7명이 중퇴한다. 선진국의 2배에 이르는 수치다.

미주개발은행 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교육수준과 부모의 경제력의 상관관계는 브라질 0.7, 멕시코 0.5, 미국 0.35 등이었다. 1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높다. 이러다보니 중남미인 80%는 성공에는 ‘능력’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도나도 조국 이탈=테우아칸 중학교 학생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뭘 하고 싶어요?” “미국에 가서 살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25명 중 23명이 같은 생각이다. 우에르타 씨도 미국 밀입국 자금 2000달러(약 200만 원)를 필사적으로 모으고 있다.

조국을 등지는 추세는 국제경쟁력의 약화도 불러 왔다. 1980년 멕시코 경제규모는 한국의 4배였다. 현재 세계은행이 산출한 경제력 순위는 한국 11위, 멕시코 12위로 뒤집혔다. 미겔 스세켈리 멕시코 사회개발 부장관은 “우리는 세계시장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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