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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세손’ 이구씨 타계]고단했던 삶 客地서 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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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세손’ 이구씨 타계]고단했던 삶 客地서 접다

입력 2005-07-20 03:18수정 2009-10-0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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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일본 생활을 접고 귀국한 이구 씨가 2004년 9월 서울 사직단에서 사직대제를 주재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황세손 이구(李玖) 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일본 도쿄 시 외곽 다이토(臺東) 구의 ‘가족장 공간’이라는 민간 장례식장에 마련된 조촐한 임시 빈소. 19일 오후 9시경 기자가 이곳에 들렀을 때 조문객은커녕 불조차 꺼져 있었다. 나종일(羅鍾一) 주일 한국대사가 오후 5시경 조문을 했고 이환의(李桓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 등 관계자들이 빈소를 지키다 떠난 뒤였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빈소를 찾은 사람은 장의사 직원들과 한국 사람들을 합해 10∼15명”이라고 했다. 호텔에서 시신을 발견한 후 부검한 일본 경찰은 “외상은 없고 심장마비가 사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 씨의 타계 소식이 서울에 전해진 것은 18일 밤. 16일 오후 그가 일본 도쿄 도심의 한 호텔에서 숨을 거둔 뒤 이틀이나 지나서였다.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한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의 한 관계자는 “일흔이 넘은 황세손이 호텔에서 객사한 채 발견됐다는 것이 놀랍고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도쿄는 고인의 출생지. 자신의 왕조를 멸망시킨 일본의 한 호텔에서 삶의 마지막까지 홀로 맞은 것이다.


영친왕(왼쪽 사진의 왼쪽)은 1963년 11월 한국 국적이 회복돼 일본에서 귀국했으나 그 즉시 병상에 누웠다. 아들 이구 씨가 어머니 이방자 여사와 함께 영친왕을 간호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구 씨와 미국인 부인 줄리아 여사의 단란했던 시절.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고인의 일생은 시종 비극적이었다. 멸망한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으로 태어나 마지막 황세손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그랬다.

고인은 1931년 영친왕(英親王)과 일본인 이방자(李方子) 여사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지만 형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장남 역할을 해야 했다. 1950년 19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명문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뒤 뉴욕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다 미국 여성 줄리아 씨와 사랑에 빠져 1958년 결혼했다.

고인은 미국 생활을 접고 1963년 부인과 함께 귀국했다. 그러나 귀국은 본격적인 시련의 시작이었다.

고인 부부는 창덕궁 낙선재에 기거하면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 사이 줄리아 여사는 장애 어린이들을 돌보며 수공예품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갔다.

줄리아 여사가 후사를 잇지 못했다는 이유로 종친들이 끊임없이 이혼을 종용하면서 이들 부부의 시련은 더욱 커져갔다. 결국 두 사람은 1977년 별거에 들어갔고 결혼 생활 24년 만인 1982년 파경을 맞았다. 고인은 이혼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부인 줄리아 여사는 고인의 도일(渡日) 이후에도 혼자 한국에 머물며 장애인 복지사업을 벌이고 의상실을 운영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1995년 미국 하와이의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2000년 잠시 한국을 방문해 고종의 장례식 장면을 담은 ‘덕수궁 국장화첩(德壽宮 國葬畵帖)’등 수백여 점의 황실 문화재를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 기증했다. 현재 국내 한 영화사는 줄리아 여사의 삶을 다룬 영화 제작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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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90년대 다시 귀국해 서울에 거처를 정했으나 이후에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말년을 쓸쓸하게 지냈다. 대한제국 맏황손으로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명예총재를 맡아 종묘제례를 주재하기도 했다.

한편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과 문화재청은 장례식 준비에 분주하다. 20일 오후 시신이 도착하면 곧이어 창덕궁 낙선재에 장례 빈청(殯廳)이 마련된다. 낙선재는 1989년 고인의 어머니인 이방자 여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고인이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렀던 곳.

영결식은 24일 오전 10시 창덕궁 희정당 앞에서 열리며 이어 종로4가 종묘 앞에서 노제가 거행된다. 조문은 일반인들도 가능하다. 조선왕실의 전통 장례 의식을 접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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