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강명]‘盧’표기와 예우?

  • 입력 2005년 7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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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국무총리실 기자실에 ‘盧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약칭일 수 없다’는 제목의 참고자료가 배포됐다. 국정홍보처 국정브리핑담당관실 소속의 강모 사무관이 작성한 것으로 신문 제목에서 대통령을 ‘盧’라고 줄여 표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에도 양정철(楊正哲)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이 같은 문제를 제기해 언론사들이 참고한 바 있다. 이 자료는 ‘노’라고 줄여 표기하는 것은 국가원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아니며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붙였다.

자료는 그 근거로 성(姓) 한 자만으로 대통령을 가리킨 예가 역대 어느 대통령 때도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정말 그럴까. 한국언론재단 홈페이지에서 과거 신문의 제목들을 검색해 봤다.

먼저 현 대통령과 같은 성인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경우를 보면 ‘노-김 18일 회동’(동아일보 1992년 9월 15일자 1면), ‘노-박 위원 요담’(동아일보 1992년 5월 19일자 1면) 등의 제목이 보인다. ‘1노 3김’이라는 표현으로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들을 한데 묶은 제목도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3김’ ‘김심(金心)’ 등 성으로만 대통령을 가리킨 제목이 많았다. 또 당시 이름 영문 이니셜로 부르는 게 유행이었기 때문에 YS(김영삼), DJ(김대중)로 표기한 경우가 흔했다. 미국 대통령, 일본 총리, 유엔 사무총장도 직함 없이 부시, 고이즈미, 아난으로 쓰고 있다.

신문기사의 제목은 한정된 글자로 의미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축약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러’, 팔레스타인은 ‘팔’로 표기하기도 한다. AP통신, 뉴욕타임스도 기사 제목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그냥 ‘부시’라고만 쓴다.

본보를 비롯한 각 신문사는 지난해 양 비서관의 문제 제기 이후 사정이 허락하는 한 ‘노 대통령’이라고 표기해 왔다. 이달 1∼18일자 본보에서 대통령 관련 제목을 ‘노 대통령’이라고 표기한 게 22건, ‘노’라고 표기한 것이 3건이다. ‘노’라고만 표기한 것이 무슨 의도가 있다는 것인지 국정홍보처에 되묻고 싶다.

장강명 정치부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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