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한여름 밤의 꿈

  • 입력 2005년 7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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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께.

졸고(拙稿) ‘민주주의 전초기지 몽골’(2일자 30면)을 읽고 보내 주신 장문의 글은 잘 받아 봤습니다. 고백하자면, 잘 받아 봤다기보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선생도 글을 보내면서 ‘기상천외하게 들릴지 모르는 주장’이라고 했지만 저도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어 온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생의 생각과 제 꿈은 마치 어린 싹을 보듬듯 조심하고 또 조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보내 주신 글을 받고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은 지금의 한국 상황, 한반도 처지를 구한말에 비유하면서 몽골과의 전략적 동맹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몽골과 대한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of Great Khan) 또는 대한합중국(United States of Great Khan)을 결성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케팅에 장점이 있는 기업과 연구개발(R&D) 능력이 뛰어난 기업이 전략적 동맹을 맺거나 합병해 윈윈하듯 우리도 우리에게 없는 장점을 가진, 그러면서도 ‘제국주의적 야욕’이 없는 나라와 합체(合體)해 난국을 타개해야 하며, 그 대상으로 몽골만 한 나라가 없다는 게 선생의 주장인 듯합니다.

구한말 지배층이 개화파와 보수파로 나뉘었지만, 양쪽 다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는 일갈이나, ‘가장 오랜 제국주의 전통’을 지닌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전략적 비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선생의 지적에는 수긍할 대목이 적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그러면서 대한민국을 형제처럼 느끼고, 국토는 남한의 15.6배나 되지만 인구는 불과 247만 명(2004년)에 불과하고, 세계 8대 자원부국인 몽골과 연방국가를 만드는 것만이 한반도 주변의 ‘제국’들과 균세(均勢)를 이루는 길이라고 설파했습니다.

중국 춘추시대,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지음(知音) 이야기’는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선생의 글은 제가 졸고의 말미에서 ‘몽골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고 자문한 것을 부끄럽게 만드는 표(表)요, 책(策)이었습니다.

다시 지도를 펴 봅니다. 압록강을 지나 만주로, 대싱안링(大興安嶺) 산맥을 넘어 몽골 고원, 그리고 알타이 산맥까지…. 침침했던 눈이 금방이라도 밝아질 듯합니다.

이 선생, 그러나 오늘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모든 것이 ‘한여름 밤의 꿈’같이만 느껴집니다. 좁디좁은 땅에서 사람들은 악머구리 끓듯 하고 틈만 나면 야차(夜叉)같은 얼굴로 돌변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이기 일쑵니다.

진정 우리가 몽골 고원에서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15.6배나 되는 땅도, 세계 8대라는 광물자원도 아닙니다. 먼저 우리가 잃어버린 ‘광야(廣野)의 DNA’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가난하지만 ‘제국의 코드’를 꿰뚫어보고 중국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몽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육사(陸史)의 외침처럼 광야에 가난한 노래의 씨라도 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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