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13>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7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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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팽월은 우리 척후가 뒤쫓는 줄 알고 짐짓 이곳에 진채를 내린 것 같습니다. 이곳에 머물 것처럼 군막을 세워 우리 척후의 눈을 속인 뒤 어젯밤 삼경에 몰래 군사들만 데리고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대량(大梁) 땅으로 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 패왕이 물었다.

“팽월이 대량으로 갔다고? 어째서 하필이면 대량이라더냐?”

그러자 팽월과 여러 번 싸워본 용저(龍且)가 나서 전령 대신 아는 대로 말했다.

“작년에 한왕 유방이 팽월을 위(魏)나라 상국(相國)으로 세운 적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팽월은 대왕에게 쫓겨 하수(河水)가로 밀려나기 전에는 외황(外黃)을 비롯한 여러 성을 차지하여 그곳에서 크게 세력을 떨친 적도 있습니다. 이번에 다시 그리로 갔다면 아마도 그때 닦아둔 발판에 의지해보려는 속셈일 것입니다.”

그 말에 패왕이 이를 부드득 갈며 소리쳤다.

“어젯밤 삼경에 떠났다면 아직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두 지체 없이 과인을 따르라. 내처 뒤쫓아 가서 팽월을 사로잡자!”

하지만 초나라 군사들은 밤을 새워가며 50리 길을 달려와 하나같이 지치고 허기져 있었다. 거기다가 이미 여러날 팽월을 뒤쫓느라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뒤끝이었다. 기마대까지도 내처 팽월을 뒤쫓기는 무리였다.

분김에 고래고래 소리치며 장졸들을 몰아대기는 해도 팽월을 사로잡기 글렀다는 것은 패왕이 먼저 알았다. 장수들이 말리자 못이긴 척 무리하게 뒤쫓기를 그만두고, 그곳에 군사를 멈추어 아침밥을 짓게 했다. 그런데 미처 그 아침밥이 지어지기도 전이었다. 뒤따라오던 본대에서 급한 전령이 달려와 알렸다.

“종리매 장군께서 보낸 급보입니다. 한왕 유방이 갑자기 성고를 들이쳐 한 싸움으로 성을 우려 뺐다고 합니다. 대왕의 명을 받들어 성을 지키던 종공(終公)은 난군 중에서 죽고, 그 군사도 태반이 죽거나 한왕에게 항복해버렸습니다.”

보름 전만 해도 섭성(葉城)에 죽은 듯 쭈그리고 앉았던 한왕 유방이었다. 그 유방이 어느새 성고로 밀고 올라가, 자신이 일껏 빼앗아둔 성을 하루아침에 되찾아 갔을 뿐만 아니라 믿고 성을 맡긴 장수까지 죽였다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듣는 패왕의 분통이 터지고 남을 소리였다. 그런데 뒤따라오듯 또 다른 전령이 달려와 더 기막힌 소식을 전했다.

“한왕을 맞아 싸우던 종리매 장군이 형양성을 나온 주가와 종공의 군사를 등 뒤로 받아 크게 낭패를 보셨습니다. 장졸 태반을 잃고 양적(陽翟)으로 쫓겨나 대왕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패왕이 제 성을 못 이겨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유방 이 음흉한 장돌뱅이가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는구나. 어찌 이리도 과인의 속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단 말이냐? 아니 되겠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고를 깨뜨려 그 늙은 허풍선이의 목부터 잘라놓고 봐야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패왕이 팽월을 아주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계포가 지키는 본대로 전령을 보내 새로운 명을 전하게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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