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류지태/인사파일 제공해 ‘이중처벌’ 할건가

  • 입력 2005년 7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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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고속도로에는 두 개의 상이한 교통표지판이 서 있다. 오스트리아 쪽에는 ‘안전벨트에 감사를’이라는 표지판이 명료한 글자로 간단히 적혀 있는 데 반하여, 독일 고속도로에는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아이의 핏빛 얼굴과 함께 ‘신중히 고려하여 운전하는 것이 나은 것’이라는 의미의 글자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독일 특유의 사고(思考)적 표현으로, 운전자로 하여금 한번쯤 자신의 운전자세를 음미하게 만드는 교통표지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일요일에 제헌절이 겹치고 보니 ‘헌법의 의미’를 음미할 여유는 쉬고 싶은 충동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과 관계없이 이 시간에도 이 시대의 헌법사는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헌법사를 돌이켜보면 정치체제의 미숙으로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이 헌법사를 주로 구성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정치체제가 상당히 안정된 만큼 과거와 같은 격동의 사건들이 자꾸 벌어지기는 힘들 듯하다. 앞으로의 헌법사는 혼란의 정치적 사건들이 아니라, 개별 정부의 정책 방향을 중심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집권세력의 행위는 헌법사로 기록되고 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 참여를 명분으로 내건 개혁만이 이 정부의 헌법사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다. 자율보다는 규제를 앞세우고, 개별적 차이를 억누르고 형식적 평등을 강조하여 온 모든 정부 정책들이 이 시대의 헌법사로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인적 정보를 민간기업에 제공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는 또 다른 측면에서 현 정부의 인권보장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정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가가 수집하고 보유하는 정보는 국익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우선 문제되는 것은 무슨 법적 근거로 국가 보유 정보를 사기업에 공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현행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은 제10조에서 보유목적 외의 목적으로 처리정보를 이용하거나 다른 기관에 제공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이를 예외적으로 새로운 법률의 제정을 통하여 가능하게 하려고 하여도 헌법상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관한 기본권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헌법상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공익목적이 이 경우 쉽게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정부패에 대한 사회 전방위적 대응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목적이 개인의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제한할 정도의 공익인지는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또한 정보보유기관의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아직 법원의 유죄 확정판단에까지 이르지 않은 ‘혐의정보’가 제공될 여지를 배제할 수 없으며, 정보가 대상자별로 선별적으로 제공되어 특정인의 불이익을 야기할 부작용은 어떻게 해소하여야 할지도 검토되어야 할 사항이다.

전현직 공무원에 대한 정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발표를 보면, 이들에 관한 정보제공으로 인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이중처벌의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비리 전력을 가진 공직자에 대한 임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변하여 온 정부가, 사기업에 대해서는 무슨 근거로 임용을 자제하도록 하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모든 정책적 판단은 그 부작용까지 고려하여 신중하게 수행될 일이다. 일부 당사자들이 인권보장의 사각지대로 밀려나는 것은 올바른 정책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이 정부에 대한 헌법사는 소리 없이 기록되고 있으며, 어떠한 성격의 정부로 헌법사에 남을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하여야 할 일이다.

류지태 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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