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병주]‘할말은 하는’ 경제부총리 보고싶다

  • 입력 2005년 7월 18일 02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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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경제 전반의 1차적 조정 역은 경제부총리가 맡아야 한다고 대통령이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이 나온 배경에는 최근 ‘청와대, 총리실, 여당이 앞장서 경제정책을 제시하는 바람에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유명무실하게 되고 있다’는 여론의 지적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 이르는 역대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회의 말석에 한두 차례 참석해 본 경험이 있다. 청와대의 주인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회의는 대통령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연출된다.

어느 경제수석비서관은 미리 참석자들이 발언할 내용을 파악해 대통령의 말씀자료를 준비했다. 돌출 발언으로 회의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을 예방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전조치가 없더라도 참석자들이 스스로 발언 수위를 조절하도록 분위기가 잡힌다. 어느 대통령은 말씀자료를 충실히 읽어 실언을 줄였지만 어느 대통령은 예정에 없는 즉석 발언하기를 장기로 삼았다. 공통점은 대통령의 말씀이 참석자들의 발언보다 훨씬 길다는 것이다. 권좌에 오래 있을수록 발언이 길어지는 것은 그간에 축적된 정보와 지식을 과시하고픈 성향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전문가가 따로 없고 직업 관료가 필요 없다고 착각하게 된다. 험난한 재야 경험을 통해 기성의 전문 인력에 대한 불신감이 깊을수록 더욱 그러하다.

2년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첫날 모임에서 위원들은 한목소리로 “경제팀장에게 힘을 실어 주고, 오래 쓰라”고 건의했다. “일정 기간 업무수행 실적을 보고 나서 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답변 말씀이 있었다. 그래서인가. 양순한 1기 부총리(김진표)는 짧게 도중하차했고 튀는 2기 부총리(이헌재)는 만신창이가 되어 퇴진했다. 다시 고분고분한 3기 부총리(한덕수)가 등장한 지 수개월이 지났다.

경제각료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대체로 합리적이고 균형감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데도 경제는 잘 풀리지 않고 있다. 경제 부진을 원유가 급등 같은 해외 요인에서 찾고 싶겠지만 그것은 다른 국가들에도 공통된 요인이다. 작년 세계적 호황에도 유독 한국만 잠재력 이하의 성장에 그치고, 올해도 3%대에 머물 만큼 암울한 성장을 예상하는 것은 국내 요인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결코 숙제를 만들어 차기 정부에 넘기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난 정권이 키운 가계부채 빚더미 탓으로 돌리기에는 이제 변명의 약발이 떨어진다.

왜 출중한 인재를 등용하고도 경제가 이 모양인가? 순치된 테크노크라트이기 때문인가? 이미 선진국 문턱에 올라선 경제에 대해 개발도상국에서나 가능한 성장의 속도감을 요구하는 국민의 지나친 기대를 탓해야 하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포스코, 삼성전자 등 일류기업들보다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신용등급을 몇 단계 낮게 평가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부가 경제에 ‘다걸기(올인)’ 하지 않고 있다. 앞을 내다보지 않고 뒤로 보고 있다. 유한한 자원의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자원낭비적 국책사업을 남발하고 있다. 청와대 주변에 숱한 위원회가 정부 조직에 옥상옥이 되고 있다. 정책 진로 신호가 엇갈리고 있다.

경제는 ‘조건부 최적화’이다. 주어진 자원의 제약을 벗어나지 않도록 추스르는 것이 경제 각료 특히 부총리가 할 일이다. 늘 함함하기보다 때로는 경제원칙에 갈기를 세울 줄 알아야 한다. 과도한 자원낭비를 억제하는 쓴소리를 할 줄 알아야 명부총리가 된다. 힘은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법, 위에서 하사하기를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각종 위원회 감축 같은 부총리에 힘을 실어주는 확실한 증거가 아직 없다. 부총리는 명철보신하기보다 딱 부러질 때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 경제가 살고 자신도 산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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