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책세상으로 풍덩]피서도 하고… 논술도 잡고

  • 입력 2005년 7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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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방학이다. 학기 중에 손대기 어려웠던 책읽기에 도전하기 좋은 기회다. 정신의 몰입은 더위를 쫓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 몸과 마음에 이보다 좋을 것이 또 있을까? 우선 방학 생활의 흐름에 맞게 독서 계획을 짜보자.

더위를 피해 휴가를 가게 될 학생들은 ‘월든’을 지니고 가자.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지낸 2년 동안의 사색과 체험을 기록한 책이다. 자연주의자인 그는 계절의 변화와 호숫가 생물들의 생존 방식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러나 추상적인 자연 예찬이 아니라 자연에 맞는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이며, 인간과 사회를 되새김질하는 성숙한 사색의 기록이다.

방학 중에 봉사활동을 하려는 학생들에겐 ‘당신들의 천국’을 권한다. 타인에 대한 봉사는 동정심의 방편이어서도 안 되고, 무탈한 나의 조건을 감사하게 여기기 위함도 아니다. 하늘을 저주해도 정당할 듯한 한센병 환자들이 궁극에는 마음의 문을 열고 전 원장을 받아들였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진정한 봉사는 나와 그들이 하등 다를 바 없는 실존적 인간임을 깊은 애정의 마음으로 동감하는 데 있다.

종교를 가진 학생이라면 신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이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종교성은 가벼운 충격에도 흔들리는 법. ‘사람의 아들’을 읽고 나서, 왜 민요섭이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지, 인간은 왜 종교의 품을 떠날 수 없는지 생각해보자. 호모 릴리글로수스(Homo religlosus). ‘종교적 인간’으로서의 숙명에 대해 또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이다.

논술 준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논술에 대비하려면 장기전의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의 흐름을 읽어 줄 좋은 안내자를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과학 읽어주는 여자’는 현대 과학의 성과와 문제점들을 영화 소설 신화와 버무려 부드러운 쿠키로 바꾸어 놓았다. 근엄한 과학이 아니라 내 삶과 섞여 있는 과학적 이치들을 쉽고 재미있게 엮어줄 것이다.

‘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은 난해한 철학 이론을 막무가내로 퍼붓기보다 헷갈렸던 판단의 딜레마들을 절묘하게 건드려 준다. 살면서 누구나 궁금해 하다가 막혔던 난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철학의 심연을 맛볼 것이다.

생각이 깊어졌다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읽어보자.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가 바로 글쓰기이다. 글을 쓰는 행위가 나 자신과 일체가 될 때,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에도 내공이 붙는 법이다. 아마도 어서 빨리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처음엔 저자를 따라가지만, 마침내는 읽고 있는 나의 정신과 대화하게 된다. 나는 누구일까? 어떤 나를 만들어 가야 할까? 책을 놓고 있을 때도 이 질문들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면 ‘Who am I?’를 읽어보자. 이 책은 읽고 참여하는 책이다. 눈으로만 읽기보다 직접 체험한다면 어느덧 당당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해야 할 공부도 산더미인데 이 많은 책들을 언제 다 읽을까!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는 시간 관리 방법을 가르쳐준다. 시간은 곧 삶이다. 시간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임을, 부족한 시간은 없다는 것을 류비셰프에게서 배우게 된다.

고귀하게 앞서가는 책만 따라가기보다, 내 삶을 업고 가는 독서가 중요하다. 논술 준비를 한다고 심각하고 두꺼운 사상서만 파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편식은 영양결핍의 지름길이다. 철학서뿐만 아니라 소설, 수필, 전기 등을 골고루 섭렵해 보자. 책과 더불어 생활이 익어갈 때 정신의 소화력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권희정 상명대사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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