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어서 오십시오!꽃미남이 모십니다

  • 입력 2005년 7월 15일 0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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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과 구매력이 급증한 여심(女心)을 잡기 위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미남 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다. 뉴욕에 본사를 둔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 ‘미스터 차우’의 총지배인, 매니저, 서버들이 여성 고객을 맞고 있다.
경제력과 구매력이 급증한 여심(女心)을 잡기 위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미남 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다. 뉴욕에 본사를 둔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 ‘미스터 차우’의 총지배인, 매니저, 서버들이 여성 고객을 맞고 있다.
서울 특급호텔에서 근무하는 안주연(33·여) 씨는 최근 로션을 사러 ‘랑콤’ 매장에 갔다. ‘꽃미남’ 타입의 남자 직원이 신제품을 정성스럽게 발라주며 상담을 해줬다. 기분이 좋아진 안 씨는 40만 원 상당의 스킨케어 세트를 ‘지르고’ 말았다.

남성용 제품은 남자가, 여성용 제품은 여자가 파는 것이 업계의 오랜 관행. 그러나 요즘에는 여성 고객이 많은 명품 매장과 고급 레스토랑, 여성용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매장에서 잘생긴 남자 직원을 쉽게 볼 수 있다. 구매력이 높아진 여성 고객을 잡기 위해 ‘미남’의 감성을 앞세우는 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미남 마케팅’은 경제와 구매력에서 남자에 비해 우위를 보이고 있는 ‘우먼 파워’ 때문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유통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하반기 소비 시장에서 기업이 가장 주목할 집단으로 여성(92.3%)이 남성(7.7%)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꼽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화장품 광고에 원빈(미샤) 권상우(더 페이스 샵)가 모델로 기용된 것을 예로 들며 “사회 경제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씀씀이가 커진 아시아의 신여성들을 붙잡기 위해 꽃미남(Flower Men)이 여성품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 잘생기고 훤칠한 남자(nice looking tall guy)

서울 청담동 중식당 ‘미스터 차우’의 매니저 5명은 모두 키가 큰 미남형이다. 이들은 미국 뉴욕 본사의 매니저 선발 기준에 따라 뽑혔다. 본사의 기준은 ‘잘 생기고 훤칠한 남자(nice looking tall guy)’.

이곳은 총지배인에게 조르조 아르마니 슈트 2벌을 유니폼으로 제공하고, 다른 직원들의 옷차림도 일정 수준이 되도록 엄격하게 관리한다. 박준석(39) 본부장은 “레스토랑 인테리어의 완성은 사람이고, 그중 절반은 직원들이 자아내는 분위기”라며 “여성 고객은 남성 직원의 서비스에 만족도가 높고 컴플레인(불만 제기)도 적다”고 설명했다.

최근 명품 브랜드들도 매장마다 남자 직원을 1, 2명씩 두고 있다. 청담동 부티크의 경우 고객이 맨 처음 만나는 도어맨의 선발 기준은 용모와 태도가 ‘0순위’다. 20대 초반의 ‘잘생기고 훤칠한’ 남자 중에서 엄선하며 단골 고객들에게 신선감을 주도록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한다.

이벤트에서도 ‘미남 마케팅’이 다양하게 활용된다. 구찌는 8월 패션쇼에서 웃옷을 입지 않은 근육질 남성들을 서비스 직원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지난해 쇼에서 처음으로 이 같은 방식을 선보여 여성 고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태평양도 지난해 ‘미장센’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매장마다 진주 목걸이를 한 꽃미남 직원들을 배치하기도 했다.

중소기업 사장 심영수(37·여) 씨는 “매장에서 여직원은 같은 여자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다소 뻣뻣한 느낌을 받지만 남자 직원은 친절하고 설명도 잘해 주는 편”이라며 “좀 멀더라도 친절한 남자 직원이 있는 매장을 찾곤 한다”고 말했다. 심 씨는 “편견이겠지만 남자 직원이 더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 추천하는 제품에 신뢰가 간다”고 덧붙였다.

패션업체에 다니는 신지연(30·여) 씨도 “여자 직원은 안 사고 나오면 뒤에서 투덜댈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남자 직원에게는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 감성을 관리하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오리진스’ 매장에서 ‘꽃미남’으로 통하는 김성곤 씨가 여성 고객에게 화장품을 발라 주고 있다. 그는 아줌마 고객 팬을 몰고 다닌다. 강병기 기자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 룸세일즈 담당 이용권(33) 대리의 고객은 80%가 여성이다. 기업에서 호텔 예약을 담당하는 비서나 구매 담당자 중 여성이 많기 때문. 그는 여자 친구에게 ‘선수같다’는 불평을 들을 만큼 여자들의 속내를 잘 알고 있다.

남성 고객과는 술 한잔으로도 거리를 좁힐 수 있지만, 여성 고객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1년가량 걸린다. 한번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 입소문까지 내 주는 게 여성 고객의 특징. 그러나 마음이 돌아서면 되돌리기 힘들기 때문에 ‘꾸준한 관심’이 필수라고 한다.

이 대리는 고객의 음력 생일을 기억해 선물을 보내고,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하는 등 고객이 ‘사적 관계’라는 느낌을 받도록 챙긴다. 대화의 소재는 가족이나 외모에 대한 것을 선택한다.

JW메리어트호텔 양식당 JW그릴의 김덕원(37) 지배인은 여성 단골 손님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는 이 호텔의 비공식 ‘여성고객 컴플레인 전담 지배인’.

그는 고객과 직원 간에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업장이라도 즉시 투입된다. 화를 내던 고객도 그가 오면 누그러진다는 게 주위의 전언. 친근한 인상 덕분이기도 하지만 여성 고객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섬세한 서비스 노하우 덕분이다.

김 지배인에 따르면 여성 고객에게는 공평한 서비스가 중요하다. 한번은 단골 손님이 바닷가재를 어떻게 먹을지 몰라 해 직접 잘라주었더니 옆 테이블에서 “저 손님은 얼마나 대단하기에 잘라주느냐”고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단골 고객에게 서비스 음료를 줄 때도 옆 테이블의 눈치를 살핀다. 한 고객에게 서비스하기 위해 옆 테이블 3, 4곳에 한꺼번에 나갈 때도 있다. 엄마가 식사할 동안 아이들과 잘 놀아 주는 것도 고객의 마음을 끄는 변수. 그는 고정 고객의 경우 데리고 오는 아이들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

화장품브랜드 ‘오리진스’ 신세계백화점 지점에 근무하는 김성곤(30) 씨는 ‘터치’를 강조한다. 그의 일은 고객의 손등에 화장품을 발라주고 상담을 해 주는 것이다. “여성 고객들에게는 터치를 좀 더 해 드리려고 노력하지요. ‘집에서 신랑도 손을 안 잡아 주는데 잘생긴 총각이 해 주니 참 좋네…’라고 말하는 분도 계시죠.”

눈웃음이 매력적인 그는 이 회사의 고객 서비스 평가에서 늘 1위를 달린다.

여성 고객을 상대하는 남성들에게 피부 관리나 운동은 기본. 성형수술을 하는 경우도 잦다. 한 특급호텔에서 룸 세일즈맨으로 일했던 김모(33) 씨는 자칫 지저분해 보이는 수염을 없애는 ‘영구제모시술’을 받기도 했다.

○ 미남은 매출을 몰고 다닌다

‘미남 마케팅’은 곧장 매출 효과로 나타난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감정에 이끌려 지갑을 여는 ‘충동 구매’는 여성 쪽에서 더 잘 나타나는 데다 친구들까지 매장에 데리고 오는 덕분에 매출이 급증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랑콤의 메이크업아티스트 이진수(29) 씨는 ‘팬’ 고객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가 일하는 매장은 매출이 최대 5배까지 뛴다. 그가 메이크업 행사에 나서면 고객들이 몰리고 구매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웨스틴조선호텔 도어맨 양동철(26) 씨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호텔계의 용사마’로 불린다. 연예인 못지않은 준수한 외모를 가진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일본인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는다.

한 일본인 할머니가 “용사마가 (양 씨에게) 졌다”는 팬레터를 보내온 것이 알려지면서 4월에는 일본 후지TV에 소개되기도 했다. 다른 호텔의 투숙객들도 일부러 그를 보기 위해 찾아와 커피라도 마시기 때문에 매출에 도움이 된다고 호텔 측은 밝혔다.

일본에서는 여성용품 CF에 남자 모델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최근 방영된 여성용 샴푸 비달사순 광고는 유명 남자 배우들이 아름다운 여자 때문에 우는 모습을 내보냈다. 광고 방영 뒤 시장점유율이 15% 올랐다.

서양의 명품 매장에서는 ‘미남 마케팅’이 보편화되어 있다. 패션 중심지인 이탈리아 밀라노 명품거리에는 도어맨부터 판매직원까지 모델 수준의 남자 직원들이 여성 고객들을 맞이한다. 이들 남자 직원은 게이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는 마케팅 효과도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이세진(32) 박사는 “미남 마케팅은 두 측면에서 여성에게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한다. 미남의 설득에 의해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잘 생긴 남자를 고르거나 그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잘생긴 사람에 대한 무의식적 호감이 물건에 대한 호감으로 전이되면서 지갑을 여는 것”이라며 “불황기에는 이성적 판단으로는 돈을 쓰지 않기 때문에 ‘미남’ 등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더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글=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사진=강병기 기자 arche@donga.com

▼기다릴 줄 알아야 여성 지갑 열린다▼

“여자가 원하는 것을 알면 세상은 당신 것이다.”

영화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영화는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중년 남성(멜 깁슨)이 여성의 구매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온갖 여성용품을 사용해 보는 도중에 일어나는 해프닝을 다뤘다. 마케팅의 시각에서 보면 이 영화는 ‘여자를 알아야 돈이 보인다’는 뜻이다.

여자는 가정 생활의 모든 품목을 구입하는 데 큰 권한을 행사해 왔다. 최근에는 경제력까지 더해지면서 여자의 구매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구매 행태나 심리로 봤을 때도 여자와 남자는 크게 다르다. 심리학자들은 남자는 타인을 지배하는 능력을 통해 자아 존중감을 얻지만 여자는 관계를 통해 그것을 얻는다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여자는 판매원과 유대가 형성되면 그 관계를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만족을 준 상대의 물건을 사지 않고 다른 이의 물건을 사는 것을 꺼리며 입소문으로 제품을 홍보하기도 한다. 기업 입장에서 여자 고객은 ‘홍보대사’이자 새 고객을 창출해 주기도 한다.

그러면 여자 고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미국의 성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자 산업 심리학자인 주디스 팅리(퍼포먼스 임프루브먼트 프로즈 회장) 씨는 구매를 종용하기보다 충분한 시간을 주고 지식과 경제력을 갖춘 고객으로 대해 주라고 조언한다. 그는 또 여자 고객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자세를 갖춰야 하며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남자들이 욕구 발생→선별→비교 검토와 의사 결정→반복 구매로 비교적 단순한 쇼핑 패턴을 보이는 데 비해 여자들은 각각의 단계를 계속 반복한다. 이 때문에 여자 고객들을 상대하는 세일즈맨들에겐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JW메리어트호텔 JW그릴 김덕원 지배인은 “아줌마 모임도 비즈니스의 하나”라며 “이들은 오랜 시간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잠재적으로는 가장 우수한 고객”이라고 말한다. 실제 최근 호텔 레스토랑 점심 고객의 60∼70%는 여자이다.

여성 고객들에게는 과도한 ‘터치’도 금물. 주부 장이경(34·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씨는 “구두 매장에서 남자 직원이 발을 만지는 바람에 불쾌감을 느낀 적이 있다”며 “오히려 정중하고 깍듯한 서비스에 더 마음이 간다”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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