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체 글씨-대원군 묵란 유통작품 절반이 가짜다”

  • 입력 2005년 7월 1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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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당시 해군 관계자들이 ‘거북선 총통’을 발굴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총통은 4년 뒤 가짜로 밝혀졌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92년 당시 해군 관계자들이 ‘거북선 총통’을 발굴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총통은 4년 뒤 가짜로 밝혀졌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정희 추사체 글씨와 흥선대원군 묵란(墨蘭·먹으로 그린 난초 그림)의 절반은 가짜다!” 최근 ‘2005 서울 서예비엔날레’의 출품작 일부가 위작 논란에 휘말려 전시장(서울역사박물관)에서 철거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중섭 작품의 진위 논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또다시 가짜 시비가 발생한 것. 계속 불거지는 논란을 계기로 도대체 가짜 문화재·미술품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서 거래하는지, 주요 사례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국보도 가짜였다=가장 충격적인 가짜 사례는 국보 274호였던 ‘거북선 별황자총통(別黃字銃筒)’. 1992년 8월 해군은 경남 통영시 한산도 앞바다에서 거북선 총통을 발굴해내는 개가를 올렸다. 사흘 만에 국보로 지정된 이 총통은 그러나 1996년 6월 가짜로 밝혀졌다. 진급에 눈이 먼 한 해군 대령이 골동품상과 짜고 가짜를 만들어 바다에 빠뜨린 뒤 건져낸 것.

2003년엔 ‘조선 성리학의 세계전’에 출품 예정이던 율곡 이이와 다산 정약용의 글씨가 가짜로 드러나기도 했다.

근현대 미술품도 예외는 아니다. 2002년 한국화랑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감정 의뢰를 받은 이중섭 그림의 75%,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그림의 40%가 가짜였다. 천경자 ‘미인도’의 경우, 작가는 가짜라고 주장하는 반면 화랑협회는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다.

1994년 가짜 논쟁을 불러일으킨 신윤복 ‘속화첩’의 한 작품. 동아일보 자료 사진
▽가짜 어떻게 만드나=회화 서예의 대표적인 위조 수법은 베끼기(모사). 진품과 흡사하게 그림을 베끼고 진품 낙관(落款·화가의 도장)을 촬영한 뒤 동판으로 떠 가짜 그림에 찍는다. 특히 근대화가 청전 이상범의 설경(雪景) 그림은 모사가 쉬워서 가짜가 많다고 한다.

회화 작품을 물에 불린 뒤 원작의 한지와 배접지(褙接紙·표구를 위해 그림 뒤에 붙이는 종이)를 분리시키고 희미한 부분에 덧칠을 해 2개로 만드는 수법도 있다. 전통 안료는 물에 젖어도 번지지 않는 특성을 이용한 것.

오래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담뱃잎 물에 한지를 적시기도 한다. 가짜 그림이 마르기 전, 뜨거운 장판 밑에 넣어 곰팡이가 슬게 하기도 한다. 수백 년 전 종이와 안료 인주를 중국에서 구입해 오는 경우도 있다.

불상 향로 총통 등 금속 공예품 위조범들은 표면 부식에 역점을 둔다. 1992년 거북선 총통 위조범은 구리 주석 아연으로 가짜를 만들어 명문을 새겨 넣은 뒤 수차례 화학약품에 담가 표면을 부식시켰다.

그림은 가짜인데 낙관만 진짜인 작품도 있다. 흥선대원군은 난초를 그려 달라는 부탁을 일일이 다 들어주기 귀찮은 나머지 사람들이 난초를 그려 오면 자신의 낙관을 찍어 주곤 했다. 대원군 묵란에 가짜가 많은 까닭이다.

▽누가 만들고 어떻게 거래하나=국내의 회화 위조 전문가는 40∼50명으로 추정된다. 화랑협회 관계자는 “위조 전문가 중 상당수는 국전과 미술대전 입선 경력이 있는 화가들”이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 이후엔 일부 골동품상들이 중국 지린(吉林) 지역에서 조선족들과 함께 가짜 불상을 만들어 국내로 반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위조범들은 고미술상과 손잡고 가짜를 유통시킨다. 1999년 한국고미술협회(고미술상 모임)의 전직 회장과 부회장, 감정위원 등이 가짜 1000여 점을 거래하다 발각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위조범들은 또 각종 전시회에 가짜를 출품해 별 탈 없이 전시가 끝나면 진품으로 보증받은 것처럼 홍보하고 다닌다. 진품 구입자에게 가짜를 끼워 파는 것도 흔한 수법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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