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전투기 조종사

  • 입력 2005년 7월 1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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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조종사들은 바다 위에서 작전할 때 종종 착시(錯視)현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기체를 상하, 좌우로 뒤집고 회전하는 과정에서 하늘과 바다를 거꾸로 인식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공중으로 급상승하려는 의도로 조종했는데 기체가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치게 되는 사고는 그럴 때 일어난다. 전투기 조종사에게는 텅 빈 바다가 복잡한 육지보다 훨씬 위험한 공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제 밤 서·남해상에서 F-5F와 F-4E(팬텀) 전투기 두 대가 연달아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으나 전투기 노후화에 따른 기체 결함과 조종사의 비행 착시, 기상 악화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2000년 이후에만도 F-5F는 여섯 대째, F-4E는 다섯 대째 추락했다. 제작된 지 22년(F-5F), 35년(F-4E)이나 지난 기종들을 아직도 운용하는 것을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이런 노후 기종을 아직도 모느냐고 핀잔을 해야 할지 당혹스럽다.

▷낡은 전투기는 그렇다 치고 조종사들의 아까운 목숨은 또 어쩔 것인가. ‘붉은 머플러’를 목에 걸치기 위해 청춘을 다 바친 우리 젊은이들이다. 국가적 손실도 만만치 않다. 공군 자료에 따르면 전투기 조종사 한 명을 배출하는 데 드는 교육비용이 30억 원, 10년차 베테랑급 조종사로 성장하기까지는 87억 원이 든다고 한다. 전투기는 새로 사오면 된다지만 숙련된 파일럿은 외국에서 임차해 올 수도 없다.

▷최근 공군 조종사의 전역(轉役)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파일럿들의 사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다. 한 전투기 조종사는 “국가가 거금을 들여 우리를 키웠지만, 관리는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육상에서 사격훈련 한 번 하려면 지역주민 눈치부터 살펴야 할 만큼 ‘달라진 여건’도 조종사를 힘 빠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한다. 이들의 기(氣)를 다시 살려줘야 한다. 그러자면 사고 탓을 하기 전에 숨진 조종사에게 조의(弔意)부터 표해야 하지 않겠는가.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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