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中企 ‘눈도장’ 찍어두자…은행, 쟁탈전 치열

  • 입력 2005년 7월 1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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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수출업체. 오후 7시가 됐지만 자리를 뜨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선적 날짜를 맞추려면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

그때 피자 다섯 판이 배달됐다. “A은행에서 시켰어요. 계산도 됐습니다.”

A은행 중소기업 대출담당 이모(36) 과장이 거래처의 인심을 얻기 위해 ‘피자 공세’를 편 것이다.

“우량 중소기업은 ‘모시기’가 쉽지 않거든요. 외환위기 때 동고동락한 업체도 다른 은행이 더 낮은 금리를 제시하면 금세 떠나 버려요.”

은행들의 전쟁터가 주택담보대출에서 중소기업 금융으로 옮아가고 있다.

○ “우량기업을 잡아라”

김승유(金勝猷) 하나은행 이사회 의장은 은행장 시절이던 올해 1월 경기 안산시 대덕전자를 방문했다. 김종열(金宗烈) 행장도 취임 직후 이 회사를 찾아 ‘눈도장’을 찍었다.

대덕전자 관계자는 “은행 빚이 한푼도 없다”며 “그런데도 은행장들이 공을 들이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것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우리은행 송기진(宋錡榛) 중소기업고객본부장은 사무실에 거의 없다. 회의를 마치면 곧바로 지방을 순회하며 지점장들을 독려하고 거래처 경조사를 챙긴다.

그는 “올해 은행 경쟁의 최대 승부처는 중소기업 금융”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씨티은행 김광채(金洸彩) 논현동지점장은 “중소기업 사장에게 찾아가겠다고 미리 전화하면 퇴짜 맞기 일쑤”라며 “일정을 파악해 다짜고짜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새 전쟁터 중소기업 금융

그동안 시중은행의 성장동력은 주택담보대출이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7조3000억 원으로 ‘10·29부동산대책’이 나왔던 2003년 4분기(10∼12월) 7조4000억 원과 맞먹는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이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규제가 강화되자 시장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대기업들은 수출 호조로 내부 자금이 많아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있다. 결국 중소기업 금융 말고는 돈을 굴릴 데가 없는 상황.

기업은행은 기업 사내전산망을 통해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사이버 은행지점 ‘e-브랜치’를 최근 선보였다. 인터넷 쇼핑몰 업체인 인터파크에 1호점을 개설했다.

국민은행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버 최고 재무책임자(CFO)’와 연 매출 500억 원 이상 중견기업을 겨냥한 ‘사이버 브랜치’를 내놓았다.

○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한 은행 지점장은 “아직 부실한 중소기업이 많아 재무상태나 영업성과가 좋은 업체에 대출이 집중되기 마련”이라며 “신용정보회사가 제공하는 중소기업 자료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은행들의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 대출은 6조5222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은행 중소기업 대출 강화내용
국민·중소 및 중견기업 대상 사이버 은행지점 개설. ‘사이버 CFO’, ‘사이버 브랜치’
·7월부터 매출 30억 원 이하 기업대출 영업점에서 취급
·기업여신 점포장의 대출 전결권 확대(10억∼70억 원→20억∼100억 원)
하나·중소기업 대출 심사기능 대폭 지점 이양
기업·사이버 은행지점, ‘e-브랜치’ 사업 시작. 연말까지 200개 목표
우리·중소기업 기술력평가 외부자문단 및 무료 컨설팅팀 가동·중소기업 전용 대출상품 ‘석세스론’ 확대 연장판매(1조→3조 원, 연말까지)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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