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6자회담… 한반도 비핵화

  • 입력 2005년 7월 14일 03시 08분


코멘트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유훈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가질 이유가 없다.”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17일 평양을 방문한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에게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이를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청신호로 해석하고 반겼다. 북핵 문제 해결의 종착지를 한반도 비핵화에 두고 있는 정부로선 당연히 희망을 가질 만한 소식이었다.

북한과 미국이 제4차 6자회담 개최에 합의한 다음 날인 10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반도 비핵화가 최종 목표이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비핵화 의지를 다시 천명했다.

이는 북한이 2월 10일 핵무기 보유 주장을 한 뒤 6자회담을 군축회담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핵보유국으로 행세해 온 것과는 다른 태도이다. 따라서 이번에야말로 뭔가 ‘실질적 진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희망적 관측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만 제대로 지켰더라면 북핵 문제가 터졌을 리 없고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가하는 6자회담이 열릴 이유도 없었다. 북한이 이 원칙을 어기고 핵무기 개발에 나섰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가 흔들리고 국제문제로 비화한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 1월 남측의 정원식(鄭元植), 북측의 연형묵(延亨默) 총리가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그러나 북한은 바로 그해 영변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해 1차 핵위기를 불러왔고 10년 뒤인 2002년에는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을 시도해 2차 핵위기를 조성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비핵화 선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1차 핵위기가 김 주석 때의 일이란 점을 들어 ‘비핵화는 김 주석의 유훈’이라는 김 위원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스스로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하고 핵개발을 계속하겠다고 밝혀 온 북한이 비핵화 원칙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뭔가 그 말 속에는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북한은 이제까지 비핵화란 용어를 주로 주한미군을 겨냥한 개념으로 사용해 왔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비난하거나 미국 핵잠수함, 핵항공모함의 한국 기항에 반대할 때 북한이 써 온 용어가 ‘조선반도 비핵화’이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6자회담에서 어떤 뜻으로 비핵화 카드를 들고 나올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자신의 핵이 아닌 미국의 핵을 문제 삼아 기존의 비핵화 논리를 고집할 경우 회담은 벽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물론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 의지를 갖고 회담에 임한다면 회담이 급진전될 수 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