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전혁]올해의 ‘가장 나쁜’ 뉴스

  • 입력 2005년 7월 13일 03시 40분


코멘트
최근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고사안’을 향해 정치권이 전면전(全面戰)을 선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비롯한 사회 시민단체들은 ‘본고사 부활저지·살인적 입시경쟁 철폐 교육시민단체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지원에 나섰다. 논란 과정에서 일부 정치권 인사는 “서울대는 비겁하다” “서울대를 ‘조져야’ 한다”는 등 원색적인 비난과 선동까지 했다.

이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 때문이 아니라 돈 잘 버는 부모가 비싼 사교육을 시켰기 때문이다. 본고사 부활은 사교육을 더욱 부추겨 교육 격차와 대학 서열화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 때문에 대학 서열화는 사회계층을 고착화시킨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이들의 논리는 허구(虛構)와 편견, 나아가 책임 회피로 얼룩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공부 잘하는’ 것이 사교육 덕분이라면 학교 교육은 그동안 뭐하고 있었나. 오늘날 사교육이 이렇게까지 비대해진 원인은 결국 학교 교육의 실패에 있지 않은가. 물론 여기에는 학교 수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부터 수업이 시시한 학생들까지 한 교실에서 가르치는 평준화 체제의 부작용이 크다.

그렇지만 현행 평준화 체제 내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는 학교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사교육 욕구를 학교 내에서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교육을 탓하기 전에 먼저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라.

그것이 통합교과형 논술이든 아니면 다른 방식이든, 대학 선발고사가 부활된다면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 역시학교 교육 정상화를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대학에 전적으로 책임을 돌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전교조와 같은 교직단체까지 가세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시행되면 학교교사들은 학원이나 과외 강사에 비해 아이들을 지도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자인(自認)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결국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대학에 책임을 떠넘기자는 의도가 아닌가.

최근 필자는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 그룹의 신입사원들에게 특강을 한적이 있는데 소위 ‘스카이’대학 출신이 20%가 채 안 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우리 사회에 학벌주의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학벌주의는 점차 완화되고 있다. 민간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정부와 민간부문 간 위상이 현저히 변화하고 있다. 능력에 근거하지 않은 학벌주의는 결국 기업 경쟁력에 장애가 된다. 특히 고도지식정보사회에서는 개인의 창의력과 능력이 더더욱 중요하다. 이런 환경 아래에서 학력주의는 근거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사실 교육 실패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교육의 국가 독점과 평준화에서 비롯된 체제적 결함에 있다. 나아가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권과 시민 사회단체들이 교육을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처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갈등과 혼란이 가중돼 왔다. 단언컨대 교육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없는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정략적’ 접근을 중단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새로운 교육 정책도 결코 성공할 수 없고 혼란만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번 서울대의 입시제도안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기이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세계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주제에…”라면서 애써 서울대를 평가절하 하더니, 입시안 발표에 온 정치권과 시민단체까지 나서 호들갑을 떠니 말이다. 더욱이 서울대 입시전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교육 당국의 입장이 대통령의 ‘나쁜 뉴스’라는 한마디에 돌변한 것은 스스로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문제는 교육의 체제적 결함은 묻어 놓고 그 부작용을 정부 규제를 통해서 덮어 보려는 대증(對症)요법의 남발이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규제는 새로운 부작용을 부른다. ‘부작용-규제-부작용’의 악순환인 것이다. 교육 문제 해결은 문제의 원인이 정부 개입에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율과 분권을 누누이 강조한 대통령이 ‘일개 대학(?)’의 입시전형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은 ‘올해의 가장 나쁜 뉴스’로 꼽힐지도 모를 일이다.

조전혁 객원논설위원·인천대 교수·경제학 jhcho@incheon.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