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 올 댓 클래식]휴가가 낳은 송어 5중주

  • 입력 2005년 7월 13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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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에 대한 꿈으로 가슴이 설레는 여름이다. 186년 전 오늘인 1819년 7월 13일, 바리톤인 친구 요한 포글과 함께 오스트리아 북부의 산촌 슈타이어에 도착한 슈베르트도 가슴이 후련했을 것이다. 그곳에는 광산주인 지역 유지 실베스터 파움가르트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팬이었던 그는 손님들을 두 달 동안이나 잘 대접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조건은 하나뿐이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곡 ‘송어’는 저와 친구들이 좋아하는 노래랍니다. 우리가 연주할 수 있도록 ‘송어’의 선율을 넣은 실내악곡을 써 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5악장으로 된 피아노 5중주곡 ‘송어’가 완성됐다. 4악장은 가곡 ‘송어’의 선율을 주제로 한 변주곡으로 짜여졌다. 가사에 ‘맑은 강물을 헤치며 헤엄치는 송어’가 들어가서이기 때문일까, 맑은 시내가 흐르는 산촌의 정취가 반영되어서일까. 리드미컬한 현악기의 연주 속을 헤엄치듯 흐르는 피아노의 또랑또랑한 음색은 마치 흰 포말을 일으키는 듯이 청신하다. 오늘날 이 곡은 휴대전화 벨소리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클래식곡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만, ‘송어’가 마냥 청랑하고 유쾌하기만 한 곡일까. 원곡인 가곡 ‘송어’는 맑은 강물 속의 송어를 잡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낚시꾼을 묘사하고 있다. 낚시꾼은 잔꾀를 내서 물을 흐려놓는다. 앞을 잘 못 보게 된 송어는 낚싯바늘에 걸리고 만다. 가곡은 쿵쿵 가슴을 저미는 피아노 반주로 위급한 송어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누가 이런 시를 지었는지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송어’를 작사한 사람은 슈베르트와 묘하게 성이 닮은 피아니스트 겸 시인 크리스티안 슈바르트였다. 그의 이력에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그가 지은 정치적 풍자시들이 유럽 전역에 알려지면서 그는 만하임에서 울름으로 추방됐고, 10년 동안 감옥살이까지 한 것이다. ‘송어’ 역시 당대에는 풍자시로 알려졌었다.

슈바르트가 묘사하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암수(暗數)로 정적을 얽어매곤 하는 영주의 전횡에 대한 비판이었을까. 그렇다면, 슈베르트는 왜 이 따끔한 풍자시에 곡을 붙였을까. 이 곡에 열광한 시골 유지들의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선율이 좋아서’였을까.

시민혁명의 열광이 채 가라앉기 전이었던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시골 ‘양반네’들의 내면에 흘렀던 미묘한 정치적 기류와 속사정은 잘 알지 못한 채 우리는 단지 그 청신한 멜로디만을 즐겁게 듣고 있다. FM에서, 백화점 매장 배경 음악으로, 또는 휴대전화 신호음으로.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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