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1884년 화가 모딜리아니 출생

  • 입력 2005년 7월 12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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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가난, 자폐, 결핵, 술과 마약 중독에다 죽은 후에야 유명해진 것까지.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일생은 드라마틱한 예술가 삶의 전형적 요소를 다 갖췄다.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 리보르노 유대계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일찌감치 가업을 걷어차고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미술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뒤 1906년 파리에 정착했다. 2년 뒤 앵데팡당전에 회화 6점을 출품해 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파리 화단에서도 드문 ‘꽃미남’이었다는 그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자폐적인 성격 때문에 번번이 사랑에 실패했다. 당연히 가난했고 궁핍과 고독을 술과 마약으로 달랬다. 미소가 없었던 차가운 사람이었지만 사실 그만큼 인간을 좋아했던 화가도 없었다. 다만 그의 휴머니즘은 캔버스에서만 구현되었다.

그는 줄곧 초상화만 그렸다. 한 장의 초상화를 위해 하루에 100장도 넘게 데생을 했다고 한다. 모딜리아니의 초상화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얼굴을 길쭉하게 늘여 놓고, 일부러 불균형을 강조하고, 눈을 도려내기도 하고, 목을 길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이처럼 캔버스에서만 사람들을 판단하고, 사랑하고, 또 비난했다.

모딜리아니는 사람을 보이는 대로 그린 게 아니라 느낀 대로 그렸다. 그가 그린 여인의 얼굴들은 가면처럼 평면적이고 도식화되어 얼핏 차갑고 무표정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아 있는 사람처럼 ‘혼’이 느껴진다. 그것은 조금씩 비뚤어져 있는 눈 때문이다. 모딜리아니는 그림마다 다른 ‘섬세한 눈’을 통해 자신의 심리 상태를 표현했다. 그가 특히 즐겨 쓴 파란색에서는 연약함, 섬세함, 우아함과 함께 삶의 비애 같은 게 느껴진다.

모딜리아니가 결핵성 뇌막염으로 1920년 1월 25일 세상을 떠나자 임신 5개월이었던 부인 잔 에뷔테른은 다음날 투신자살했다. ‘천국에서도 모델이 되어 달라’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 셈이 된 것.

생전의 모딜리아니는 당대 파리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주정뱅이 예술가’로 불렸다. 그러나 지난달 22일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가 그린 아내 잔의 초상화는 325만 파운드(약 59억 원)에 팔렸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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