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독서, 양보다 질이다…독서왕 3인의 독서법&클리닉

  • 입력 2005년 7월 12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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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리닉을 맡은 한국독서교육개발원 남미영 박사.
독서클리닉을 맡은 한국독서교육개발원 남미영 박사.
책읽기가 강조되면서 각 지역 도서관마다 어린이 도서 대출건수가 늘어나는 등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보다 많은 책을 읽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독서전문가들은 “읽는 책 권수가 많다고 해서 독서 효과가 높은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독서는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책은 많이 읽지만 혹시 잘못된 독서 습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독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독서교육개발원 남미영(청소년 문학) 박사는 “오히려 책을 많이 읽는 아이의 학부모가 자녀의 독서 경향에 신경을 쓰지 않고 안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장소 협찬 교보문고

책을 많이 읽어도 줄거리만 대충 읽거나 한 분야만 편중되게 읽으면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 아이가 이야기 속에 담긴 주제나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고민하면서 심층적으로 책을 읽는지는 엄마의 질문에 아이가 어느 정도 대답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장발장’을 읽고 그 사람이 빵을 훔쳐 감옥에 갔다는 줄거리만 알고 있는 아이와 장발장이 감옥에 간 것이 옳은지 그를 도와준 신부님은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본 아이의 사고의 폭은 하늘과 땅 차이다.

남 박사는 “엄마의 질문이 아이의 사고 수준을 결정한다”고 단언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동화책에서 까만 강아지가 발만 하얀 걸 보고 “강아지가 하얀 양말을 신었다”고 표현할 때 “개가 어떻게 양말을 신니?”라고 면박을 준다면 0점짜리 엄마다.

대신 “하얀 양말보다 하얀 털양말이란 표현이 더 좋지 않니?” “그것보다 더 딱 맞는 표현은 없을까?”라고 물어 아이가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 박사는 “심층적인 책읽기와 상상력, 표현력을 기르는 버릇을 들이지 않으면 나중에 학교 공부를 할 때도 하나를 가르쳐주면 하나밖에 모르는 아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수준에 맞는 독서목록을 만들어 다양한 분야의 책을 깊이 있게 읽어야 제대로 된 독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남 박사의 도움을 받아 독서광으로 소문이 난 어린이 3명의 독서 스타일을 분석하고 주의점을 들어봤다.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1년에 3000권 제 손 거쳐갔어요▼

김미옥 기자
박윤진(6·서울 송파구 가락동·사진) 양은 하루 15권 이상의 그림책, 동화책을 읽는다. 읽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4세 때 한글을 뗀 이후 줄곧 책을 붙잡고 살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꼬마 독서광이다.

지난해부터는 유치원이 끝나는 오후 3시쯤 매일 엄마와 함께 동네 도서관에 가서 6시까지 독서를 하고 집에서 볼 책을 5권씩 빌려온다.

방학 때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수십 권의 책을 읽기도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3000여 권이나 읽었다.

어머니 김성연 씨는 박 양이 고르는 책과 도서관에 비치된 어린이용 책을 분야별로 섞어서 읽힌다. 특별한 도서목록을 따르지는 않지만 동화, 역사,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동안 박 양이 일기장 겸 쓴 독서노트가 5권이나 된다. 줄거리나 관련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나름대로 시를 적어놓기도 한다. 김 씨는 “어릴 때부터 독서습관을 길러주고 싶어서 매일 책을 읽도록 유도했고 그동안 잘 따라왔다”며 “하지만 너무 기계적으로 많은 책을 읽는 건 아닌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클리닉:읽는 책 반으로 줄이고 깊이있게 읽으세요▼

“동화 ‘개구리 왕자님’을 읽었는데 그걸 읽고 무슨 생각을 했니?”

“특별한 생각 안했어요.”

독서목록 리스트를 보고 책을 읽고 느낀 점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지만 줄거리를 설명하는 정도에 그쳤다. 책은 많이 읽었지만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진정한 내용과 의미를 소화하면서 심층적으로 읽지 못한 것이 문제다.

독서할 때는 어휘이해-분석-종합-상상-추리-비판-문제해결의 단계까지 이뤄져야 하는데 어휘 이해만 하고 독서를 끝내는 상황이다.

줄거리만 읽는 습관이 계속되면 사고력이 늘지 않아 나중에 학교 공부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만큼 잘못된 습관만 고치면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하다.

우선 독서 권수를 반 이하로 줄이고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도록 해보자. 엄마가 먼저 아이가 읽는 책을 읽고나서 아이에게 질문을 하면 좋다.

예를 들어 “개구리일 때는 쌀쌀맞게 대하다가 나중에 왕자가 되니 결혼을 한 공주는 어떤 사람일까?” “네가 공주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물으면서 생각하는 버릇을 길러준다.

독서 감상문은 안 쓰는 것보다는 한두 줄이라도 쓰는 게 좋지만 매일 쓰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일주일에 한 번을 쓰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깊이 있게 적도록 유도해 보자.

▼“과학책은 열번 스무번도…” 서울 우이초교 2년 권준수▼

서울 우이초등학교 2학년 권준수(8·사진) 군은 과학을 굉장히 좋아해 손에서 과학책을 놓지 않는다. ‘와이 시리즈’ ‘과학학습만화’ ‘자연의 신비’ 등 집에 있는 책의 절반 이상이 과학책이고 도서관에 가서도 과학책만 고른다.

특히 좋아하는 과학책은 10번이고 20번이고 읽어 내용을 거의 다 외우는 수준이다.

엄마나 누나에게 “핵이란?”하면서 책에 나온 내용을 설명해줄 정도로 평소 과학의 원리나 자연현상에 관심이 많다.

가끔 부모가 역사, 문학 등 다른 분야의 책을 권하면 마지못해 읽기는 하지만 2번 보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어머니 이미현(41) 씨가 ‘이야기 한국사’ 등 역사책을 많이 권해 줬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스 신화 만화는 재미있어 해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과 특징을 모두 외웠다. 주로 과학책을 읽기 때문에 독서노트는 거의 쓰지 않는다.

이 씨는 “너무 과학책만 편식하는 것은 아닌지, 더 수준 높은 과학책을 권해 줘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클리닉:저학년용 동화책 읽고 어휘력-상상력 길러야▼

“지금까지 읽었던 위인전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니?”

“과학자 아인슈타인 빼고는 없어요.”

현재의 독서 방식은 ‘지식 얻기’에 편중됐다. 어릴 때 감수성을 키우지 못하고 단편적 지식만 배우게 되면 나중에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성격이 될 수도 있어 균형 잡힌 독서가 필요하다.

훌륭한 과학자는 상상력, 추리력, 창의력이 풍부해야 하는데 과학책만 읽어서는 이런 능력이 발달되기 힘들다.

사람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갖게 해야 한다. ‘주인공의 심리는 어떨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등 인간의 감정 세계를 이해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문학책을 재미없어 하는 것은 과학 용어 외에는 알고 있는 어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 어휘가 부족하니 다양한 문학적 표현이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는 그림책이나 초등 저학년용 동화책, 위인전을 읽으면서 어휘능력과 상상력, 표현력을 길러야 한다. 온 가족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등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자기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과학책을 못 읽게 막는 것보다는 문학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어른읽는 명작이 좋아요” 서울 중앙대부속초교 4년 심지연▼

서울 중앙대부속초등학교 4학년 심지연(10·사진) 양은 부모님 책장에 있는 소설, 잡지부터 동화책, 신문까지 가리지 않고 볼 정도로 책을 좋아한다. 온종일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스타일이다.

요즘은 성인용 감성소설이나 명작에 관심이 많아 아버지 책장에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 ‘주홍글씨’ ‘나폴레옹을 사랑한 데지레’ 등도 읽었다.

심 양의 부모는 “집에는 소설 등 아이에게 적합하지 않은 ‘성인류’의 책이 많아 고민”이라며 “아이의 지적 관심이 또래보다 높은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수준의 책을 권해 줘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 아이에게 50권짜리 ‘초등학생용 위인전 시리즈’를 사다 줬지만 “대부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그래서 지금은 로맨스 소설을 제외한 성인용 책인 ‘야생초 편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등을 권하고 심 양도 재미있게 읽는다. 그러나 부모는 심 양이 마음이 여리고 감수성이 예민한데 혹시 소설책을 많이 읽으면 이런 성향이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클리닉:너무 빨리 어른세계 접하면 순수함 잃기쉬워▼

“왜 동화책보다는 어른용 책을 많이 읽지?”

“동화책은 시시해서요.”

심 양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로미오의 성격과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또래 친구들보다 사고의 폭이 깊다. 하지만 아동문학, 청소년문학, 성인문학이 나눠져 출판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주홍글씨’ ‘죄와 벌’ 같은 책은 어린이에게 불필요한 성인의 갈등과 고민을 알게 해 어른의 세계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어 너무 일찍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어릴 때 어른의 세계를 빨리 접하면 아이다운 ‘순수한 신비감’을 잃기 쉽다. 그동안은 책을 줄거리 위주로 읽었기 때문에 청소년 도서가 재미없는 것이다. 부모의 다양한 질문을 통해 분석과 상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 보자.

책은 많이 읽고 있지만 그 나이에 꼭 읽어야 할 책들이 빠져 있다. 아이와 함께 중학교 1, 2학년용 내에서 독서목록을 작성해 계획성 있는 독서를 하게 도와줘 보자.

세계문학전집이 좋다. 어린이가 배워야 할 다양한 고급 어휘가 나오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류의 지혜와 가치관이 들어 있어 고학년 초등학생이 읽어야 할 필수도서다.

남미영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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