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실적 평가기준’ 법원서 관행과 다른 판결 논란

  • 입력 2005년 7월 1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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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공사의 입찰에서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건설업체의 공사실적 평가기준에 대해 법원이 기존 관행과 다른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 판결이 입찰 계약 질서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한다.》

○판결 내용과 쟁점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달 10일 포항시 하수관 정비공사(사업비 530억 원) 입찰에서 떨어진 태림 컨소시엄이 ‘입찰 심사기준이 잘못됐다’며 포항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태림이 공사를 낙찰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쟁점은 여러 건설업체가 모인 컨소시엄의 예전 공사 실적을 다음 공사 입찰 때 어떻게 인정하느냐는 것.

행정자치부 예규 136호는 ‘이전에 공사를 수주했던 컨소시엄이 동일하게 공동으로 다시 입찰에 참여하면 예전 공사의 실적을 모두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일하게 공동으로’라는 문구에 대해 포항시는 같은 업체들이 같은 공사비율로 참여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에 따라 구성원은 같지만 공사비율이 예전 공사와 다른 태림 컨소시엄의 실적을 100%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태림은 입찰에서 탈락했고, 다음 순위인 한양 컨소시엄이 공사를 맡았다.

하지만 법원은 ‘동일하게 공동으로’의 뜻을 구성원만 같으면 되는 것으로 해석해 태림의 손을 들어줬다. 공사 비율은 예전과 다르더라도 구성 기업만 같다면 이전 공사실적을 100% 인정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태림이 낙찰받는 게 맞다는 것이다.

한양 컨소시엄은 이에 대해 “판결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낸 상태다.

행자부는 문제가 생기자 2월에 이 문구를 ‘구성원과 공사비율이 동일한 상태로 입찰한 경우’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해 바꿨다.

○문제점과 부작용

법원 판결대로라면 전문 시공능력이 없는 업체들이 전문성이 요구되는 공사를 따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예를 들어 전문시공능력을 가진 A사와 단순 토목공사만 가능한 B사가 9 대 1의 비율로 공사를 따낸 뒤 다른 공사에서는 1(A사) 대 9(B사)의 비율로 응찰해도 공사를 수주할 수 있게 된다. 전문 시공능력이 없는 B사가 공사의 90%를 맡게 되는 일이 생긴다는 얘기.

GS건설 관계자는 “시공능력이 전혀 없는 입찰 브로커들이 판결을 악용할 수 있다”며 “정부 공사 입찰 과정에 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성이나 시공능력이 떨어지는 업체들이 대형 공사를 맡게 되면 중간에 공사를 포기하거나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슷한 소송들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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