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입력 2005년 7월 9일 04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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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미국의 대표적 신행동주의 심리학자 B F 스키너, 과학으로서의 정신의학에 사형선고를 내렸던 데이비드 로젠한, 심리학 분야의 잔 다르크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왼쪽부터 미국의 대표적 신행동주의 심리학자 B F 스키너, 과학으로서의 정신의학에 사형선고를 내렸던 데이비드 로젠한, 심리학 분야의 잔 다르크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로렌 슬레이터 지음·조증열 옮김/344쪽·1만3500원·에코의 서재

1970년대 초반 미국의 무명 심리학자였던 데이비드 로젠한. 그는 정신과 의사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정신질환자를 가려낼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로젠한은 자신을 포함해 8명의 가짜 정신병 환자를 모집했다.

‘스키너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비둘기. 먹이를 통해 쥐가 지렛대를 누르도록 유도했던 스키너는 비둘기에게 탁구를 가르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장담했다. “동물에겐 반응이 있을 뿐 마음이 없다”고 믿었던 그는 실제로 자신의 딸을 상자 안에 가두어 키우기도 했다. 사진 제공 에코의 서재

실험기간은 한 달. 가짜 환자들은 진정제를 삼키지 않고 혀 밑에 감춰두는 요령을 익힌 뒤 병원을 찾아가 거짓 증상을 호소했다. “목소리가 들립니다. ‘쿵’ 소리를 내요.”

그러나 병동에 들어가서는 정상인과 똑같이 행동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단 한 명을 빼고 전원이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진을 받고, 약물을 투여 받으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있는가. 로젠한은 “정신의학은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고 선언했다.

이 책에는 20세기를 요동시켰던 천재적인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 10명이 등장한다.

저자는 스키너의 ‘상자 실험’을 시작으로 혁신적이고 논쟁적이던 심리실험을 통해 인간본성에 대한 대담한 가설과 이론을 마치 한 편의 미스터리 극처럼 추궁한다.

심리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논문에 갇혀 있던 인간에 관한 통찰을 ‘스토리’가 있는 에세이 형식에 녹여 인간의 자유 의지와 기억의 메커니즘, 군중심리와 같은 핵심 주제를 파고든다.

양식 있는 나치 정권의 독일 장교들은 왜 히틀러의 비이성적이고 잔인한 명령에 복종했을까? 가난한 사람이 부자에 비해 약물 중독에 잘 빠져드는 이유는? 왜 멀쩡하던 사람이 카지노에만 가면 미치는 걸까? 뇌물의 액수가 적을수록 약발이 잘 받는다? ….

일련의 쥐 실험을 통해 ‘보상이 행동을 강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스키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오늘의 유행어는 그에게 빚지고 있다.

고양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돼지에게 진공청소기를 밀게 했던 그는 “조건반사를 이용해 시민들을 착한 로봇군단처럼 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심리학 분야의 잔 다르크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그는 어린 시절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기억이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주장해 엄청난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로프터스는 가짜 기억이식 실험을 통해 기억은 ‘왜곡’될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두뇌 속에 완전히 잘못 이식되기도 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우리의 기억은 모래처럼 빠져나가기 쉽고, 쥐새끼처럼 간사하다….”

정신의학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던 로젠한 실험의 후일담.

실험결과에 분노한 한 정신병원에서 그에게 도전장을 냈다. “앞으로 석 달 내에 가짜 환자들을 보내시오. 우리가 그들을 모두 찾아낼 테니까!”

로젠한은 선선히 결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뒤 병원 측은 “로젠한이 보낸 가짜 환자 41명을 찾아냈다”고 의기양양하게 발표했다. 그러나 로젠한은 단 한 명의 환자도 그 병원에 보내지 않았다.

경기 끝! 이렇게 해서 정신의학은 나락으로 추락한다. 원제 ‘Opening Skinner's Box’(2004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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