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스릴러, 여름 습격하다

  • 입력 2005년 7월 9일 04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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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리샴
존 그리샴
◇브로커/존 그리샴 지음·최필원 옮김/448쪽·1만1000원·북앳북스

◇황금과 재/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지음·홍상희 옮김/296쪽(1권), 288쪽(2권)·각 8500원·문학동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직전에 백만장자 로비스트 마크 리치 씨를 사면시켜 논란에 휩싸였다. 리치 씨는 사기 탈세를 저지른 뒤 스위스 등지로 도망 다니던 중이었다.

존 그리샴 씨의 새 소설 ‘브로커’에도 사면 요구에 시달리는 임기 말의 미 대통령이 나온다. 대통령이 미 중앙정보부(CIA)의 요청을 받고 끙끙대다 사면시킨 사람은 노련한 브로커 조엘 백먼. CIA는 백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탈리아 볼로냐에 숨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사실은 CIA의 ‘미끼’라는 걸 알게 되고 살아남기 위해 이름도 마르코 라제리로 바꾸고 변신에 나선다.

아베카시스

법정스릴러 전문작가 그리샴 씨의 18번째 소설인 ‘브로커’는 그가 처음 써보는 스파이 이야기다. 백먼이 숨은 볼로냐의 카페테리아와 궁전, 거리를 다루는 그의 손길은 치밀하면서도 빠르다. 휴가지로 가는 차(또는 비행기) 안에서 읽기 좋을 짜릿한 속도를 가지고 있다.

‘브로커’가 첩보 스릴러라면 프랑스 작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씨의 ‘황금과 재’는 역사 스릴러라 할 만하다. 나치에 협력했던 프랑스인들에 대한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실제 역사와 밀착해서 만든 작품이다. 아베카시스 씨는 20대에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교수 자격증을 따낸 천재 작가로 불려 왔다.

유대인인 그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이번 소설의 얼개를 짜나갔다. 1995년 겨울 베를린에서 독일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신학자인 실러가 허리가 잘린 채 발견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시신의 상반신은 사라지고 없어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 펠릭스 베르너는 이 사건이 나치 시절 실러의 감춰진 행적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해 역사학자 라파엘 시머에게 조사를 의뢰한다. 두 사람은 파리 워싱턴 로마 베를린을 넘나들며 유대교와 가톨릭 신학자, 아우슈비츠 생존자, 레지스탕스, 독일군에 대한 협력자들을 추적해 간다.

이 소설은 이야기의 선로(線路) 위를 기차처럼 질주하는 전형적인 스릴러와는 다르다. 피의자와 추적자가 얽힌 복잡한 연애의 삼각관계가 나오며, 캐릭터들의 양심의 문제가 나치 시대의 전력(前歷)과 더불어 소개된다. 소설 속에서 내레이터로 나오는 젊은 역사학자 시머는 이야기의 한 고비를 넘어갈 때마다 선과 악, 신과 악마, 신의와 배신에 대해 깊숙하게 숙고하고 읊조린다. 여기에는 “어떻게 신이 존재하는데 홀로코스트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깔려 있다. ‘황금과 재’는 범죄의 발생이라는 플롯 속에 이처럼 진지하고 지적인 탐색을 함께 하고 싶은 이들이 읽을 만한 소설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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