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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남영]‘書信정치’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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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남영]‘書信정치’의 부작용

입력 2005-07-09 03:19수정 2009-10-0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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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또 편지를 썼다. 7월 5일에 이어 6일에도 썼다. 대통령은 올해 들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두 번 편지를 썼고 행정수도 위헌 결정, 독도 및 역사교과서 문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윤광웅 국방장관의 진퇴 문제, 연립정권 도입 등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편지를 썼다. 취임 후 11번째 편지를 썼지만 그중 9번이 올해 쓴 것이고 보면 최근 들어 특히 대통령의 편지가 잦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의 생각을 글로써 국민에게 분명하게 전달한다는 의미에서는 일견 바람직해 보인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많은 국민이 동시에 대통령의 생각과 만난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러한 ‘서신(書信) 정치’는 투명하고 진솔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도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크고 작은 정치적 현안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속마음을 소상히 밝히는 방식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며 국가의 주요 사안에 대해 최종 결정권자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언행은 태산처럼 무겁고 신중해야 한다.

외교 등 주요한 문제에서는 상황이 바뀔 경우 선택을 바꿀 수도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회색(灰色) 문법’도 적절히 구사할 필요가 있다. 눈앞의 문제 때문에 너무 자주 ‘서신 정치’를 활용하는 것은 자칫 대통령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대통령에게는 기자회견, 국회 연설, 담화문 등 다양한 대국민 소통 수단이 있다. 편지는 필자의 마음을 곡진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공식적인 책임이 따르지 않는 비공식적 행위라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의 정치성 발언은 자칫 인기영합주의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칫 감성에 호소하기 쉬운 포퓰리즘적 요소가 있는 것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본래 정상적인 민주사회에서 사회적 담론의 공론화 과정은 학계, 언론계, 압력단체, 그리고 각종 시민단체들의 몫이다. 그중 국회는 표출된 여론을 취합해서 정책을 생산해 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좋은 정책을 생산해 내기 위해 경쟁하는 곳이 바로 정당과 국회이며 그곳이 소위 ‘정치의 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정치의 장’에 직접 관련된 민감한 현안들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회의 견제를 받아야 하는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정치적 고비마다 편지를 남발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으며 힘이 없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자주 이야기하고 있다. 편지의 수신인도 ‘이기명 선생께’, ‘당원동지 여러분께’, ‘전국 공무원에게’ 등 매우 다양하다. 이 때문에 비판자들은 대통령의 편지가 전체 국민보다는 특정 그룹을 겨냥해 지지와 결속을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하곤 한다.

최근 대통령의 서신을 보면 대통령의 힘은 여대야소의 정치구조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대통령의 힘은 정책수행 과정과 정책수행 결과에 대한 국민의 평가에 의해 생성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정부가 각종 정책을 수행한 결과 국민 행복 수준이 향상되었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는 힘 있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시간적으로 충분히 여유가 있는 만큼 편지 쓰기에 힘을 쏟기보다는 국민 행복을 증진함으로써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남영 숙명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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