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河西 김인후선생 ‘훈몽재’ 복원

  • 입력 2005년 7월 8일 0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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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대학자인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1510∼1560년) 선생이 후학을 가르쳤던 훈몽재(訓蒙齋)가 복원된다.

전북 순창군은 하서 선생이 쌍치면 둔전리에 세운 훈몽재를 복원하기 위한 기초 사업으로 타당성 조사와 발굴 조사를 마치고 복원에 필요한 예산 확보에 나섰다고 7일 밝혔다.

훈몽재는 하서 선생이 명종 3년(1548년)에 세운 강학당(講學堂). 이곳에서 가르침을 받은 인물 가운데는 가사 문학의 최고봉인 송강 정철(松江 鄭澈)을 비롯해 조희문(趙希文) 양자징(梁子徵) 기효간(奇孝諫) 변성온(卞成溫)이 꼽힌다.

순창군이 전주대에 의뢰한 타당성 조사와 발굴 조사 결과 최초의 훈몽재는 둔전리 어암마을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하서의 후손인 김시서가 중건했다.

1827년 후손에 의해 원래 훈몽재 터가 아닌 점암으로 옮겨져 중건됐고 이때 어암서원을 함께 건립해 김인후와 정철, 이이의 위패를 모셨다. 서원은 고종 때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지고 훈몽재는 6.25전쟁 당시 소실됐다.

순창군은 군비 5억원 등 11억원을 들여 훈몽재와 부속건물, 하천가의 정자인 대학암(大學岩) 등 4동을 복원하기로 하고 2007년에 사업을 착수할 방침이다.

하서 후손인 울산 김씨 종친회 측에서는 타인 소유로 넘어간 훈몽재 터와 대학암 일대 부지를 매입해 놓고 순창군의 훈몽재 복원사업에 기부 체납할 계획이다.

하서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서 태어나 성균관에서 퇴계 이황 등과 수학하고 1540년 별시 문과에 급제, 홍문관 부수찬을 지내며 세자(인종)를 가르쳤다.

을사사화(1545년)가 일어나자 처가인 순창으로 낙향해 학문연마와 후학 양성에 몰두해 하서집 16권 8책과 ‘백련초해’를 남겼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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