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피플]美 한반도 전문가들 ‘코리아 인연’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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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퀴노네스전 美국무부 북한담당관
케네스 퀴노네스
전 美국무부 북한담당관
《미국 워싱턴에는 싱크탱크들이 많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연구소들이 밀집해 있는 워싱턴의 K스트리트를 빗대 싱크탱크들을 ‘K스트리트의 현인(賢人)들’이라고 다소 조롱기 섞인 어투로 부르지만, 이들은 미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고 여론을 만든다. 한반도 전문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20∼30명. 하지만 한국에 입문한 배경은 십인십색(十人十色)이다.》

▼“정보부대서 62년 대선 비밀문서 해독했죠”▼

케네스 퀴노네스 전 美국무부 북한담당관

○ “군대에서 억지로…”

1992년 미국 외교관으로는 최초로 북한 땅을 밟은 케네스 퀴노네스 전 국무부 북한담당관의 ‘한국 연구’는 군복무를 통해 시작됐다. 애리조나대 1년을 마친 뒤 육군에 입대한 퀴노네스 전 담당관은 몬터레이 군사언어학교에 배치됐다. ‘외국어 학습’이란 특이한 보직이 주어졌을 때 그의 희망은 프랑스어. 그러나 정작 배당된 것은 미지의 난해어(難解語)였던 한국어였다.

1년간 ‘한국어 전투’를 마친 뒤 정보부대에 배속돼 1963년 한국 대통령 선거 때 한국어 비밀문서 해독 업무를 했다. 그는 6일 인터뷰에서 “5·16군사정변 직후 선거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생생히 봤다”고 말했다.

선거 직후 쓰레기 더미 속의 서울을 방문한 직후 한국어 배운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가난과 억압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미래를 낙관하는 한국인을 만났다.

1968년 하버드대 진학 당시 지도교수는 “한국사를 전공하면 굶기 십상이니 중국어나 일본어를 공부하라”며 한국사 전공을 말렸지만 그는 뿌리쳤다. 물론 한국인 부인을 만난 영향도 없지 않다.

▼“80년대 성가대원들의 민주화시위 잊지못해”

댄 스나이더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
칼럼니스트

댄 스나이더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 칼럼니스트

○ 취재하며 한국을 배웠다

지난달 말 공개된 워싱턴 정보지 ‘넬슨 리포트’에는 “미국 내 영향력 있는 뉴스매체 종사자 중 한국 전문가는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지낸 돈 오버도퍼 씨와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의 칼럼니스트인 댄 스나이더 씨뿐”이란 대목이 나온다.

그는 1970년대 말 지미 카터 행정부 당시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리처드 스나이더 대사의 아들이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대사를 지낼 때는 이미 성인이어서 근무지(서울)에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도쿄 지국장으로 일하던 1985∼90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언론인의 눈으로 한국을 배웠다. 특히 1987, 88년 민주화 시위가 격렬할 때는 거의 모든 시간을 시위 현장에서 보냈다.

그는 5일 전화 인터뷰에서 “어느 날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교인들이 성가대원복을 그대로 입은 채 민주화 구호를 외치며 시가지로 쏟아져 나왔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85학번 386… 姓은 白씨가 아니에요”

피터 벡
국제위기기구(ICG)
아시아 소장

피터 벡 국제위기기구(ICG) 아시아소장

○ 배낭여행이 인생의 전환점

현재 서울에서 근무 중인 피터 벡 국제위기기구(ICG) 아시아 소장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2학년을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한국으로 배낭여행을 왔다가 평생의 업(業)을 결정한 경우.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격한 1987년 5월의 시위는 그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전공을 정치학에서 동양학으로 바꿨다. 마침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 와있던 한양대 리영희(李泳禧) 전 교수의 ‘한민족 외세투쟁 백년사’를 들었다. 리 교수의 회고록 ‘대화’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최근 한국 신문들이 미국과 북한의 갈등에 관한 미국인 전문가의 의견을 싣는데, 그때 나에게 배운 미국인 학생이 자주 기고해요. 내 강의가 계기가 돼 졸업 후에 한국에 나와서 공부하고 돌아가 학위를 받은 피터 벡이라는 젊은이예요. 좋은 한국학 제자를 한 사람 양성한 셈이지.”

그는 1967년생인 스스로를 ‘85학번 386’이라고 자처한다. 3월엔 통일부 통일정책평가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거의 한국인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는 스스로를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내 성은 벡(Beck)이지 백(白)이 아니다”고 너스레를 떤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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