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쫓기는 질의 끊기는 답변

  • 입력 2005년 7월 7일 00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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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김승규(金昇圭)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린 국회 145호 회의실.

이날 오후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 의원이 보충질의를 시작했다.

“5억 원대의 소득신고가 누락됐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네,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탈루한 것은 없습니다. 구체적인 항목을 써 넣지 않은 것일 뿐인데 거기에는 공무원 퇴직금과….”

“시간이 없어요. 왜 질문도 하지 않은 부분까지 막 대답하고 그래요.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순간 김 후보자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굳어졌다. 그는 “이건 해명해야 하는 문제”라고 재차 항의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서면으로 답변하세요”였다.

소득신고 누락 의혹은 도덕성에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도 김 후보자는 제대로 답변할 시간을 얻지 못했다.

다급한 질의자의 추궁에 변변히 항의도 못하고 입을 다무는 답변자의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열린 세 번의 청문회에서 모두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쌀 협상 국정조사 청문회의 주(主)질의시간은 의원 1인당 10분. 조대현(曺大鉉)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8분이었고 김 후보자의 경우는 더 짧은 7분이었다. 제한시간이 지나면 마이크는 자동으로 꺼진다. 이렇다 보니 도중에 의원들이 입만 벙긋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민망한 단절’도 생긴다.

쌀 협상 국정조사 위원인 한나라당 김재원(金在原) 의원은 “각종 청문회 추태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시간 제약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청문회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시간 제약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주질의 8분, 보충질의 5분’ 식으로 쪼개다 보니 문답이 클라이맥스에 이르기도 전에 싱겁게 끝나기 일쑤다. 그나마 금쪽같은 시간도 본안 질의보다는 지엽적인 의견 개진에 소진되는 경우가 많다.

질의답변 시간을 늘리면 되지만 순서가 뒤쪽인 국회의원들이 불리하다는 이유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변죽만 울리는 청문회를 지켜보다 보면 속이 터지는 것은 기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불합리한 청문회 방식 개선을 위한 청문회부터 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이정은 정치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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