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잇단 聯政발언 속셈은]개헌 民心떠보기-레임덕 막기

  • 입력 2005년 7월 6일 03시 04분


코멘트
盧대통령 티타임노무현 대통령(왼쪽)이 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도중 차를 마시며 이해찬 국무총리(가운데),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에 ‘한국 정치,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글을 올려 연정에 대한 구상을 국민에게 직접 밝혔다. 석동률 기자
盧대통령 티타임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도중 차를 마시며 이해찬 국무총리(가운데),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에 ‘한국 정치,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글을 올려 연정에 대한 구상을 국민에게 직접 밝혔다. 석동률 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5일 대국민 공개서신을 통해 또 한번 연정(聯政) 구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24일 당-정-청 수뇌부 모임인 ‘11인 회의’에서 비공식적으로 했던 ‘연정’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자 그 진의를 설명하기 위해 이 서신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권력구조 운용 및 개편 논의의 물꼬를 공개적으로 텄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간단치 않은 의지가 읽힌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비정상’이라고 정면으로 받아치기도 했다.

▽지금의 국정 난맥이 여소야대 탓?=노 대통령은 연정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를 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했고, 이것이 무너진 것은 4·30 재·보선에서였다. 현 집권세력의 국정운영 미숙에 대해 유권자가 심판한 결과였고 따라서 지금의 여소야대 구도는 여권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올해 들어서는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의혹사건과 행담도 개발사업 지원 의혹사건이 터지면서 정부 여당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이후 여권의 정국 주도력은 급속도로 약화돼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국정 난맥의 원인으로 여소야대를 들고 나온 것은 ‘네 탓’ 식의 그릇된 상황 인식의 결과물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노 대통령은 서신에서 “야대(野大) 국회가 각료 해임건의안을 들이대 각료들이 흔들리고 결국 대통령의 영이 서지 않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2년 4개월 동안 야당에 의해 각료 해임건의안이 발의된 것은 단 2차례였고 그중 1건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왜 하필 지금 연정 문제를 공론화?=노 대통령은 4일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 “단기적으로 사안별 정책공조가 대안으로 가능하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이날 서신에서는 연정 구성에 집착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11인 회의’에서 원론적 언급을 했다. 4일에는 조기숙(趙己淑)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해명하면서도 “검토해 볼 수 있는 대안”이라고 사실상 공식화했다. 그리고 5일 노 대통령은 작심한 듯 공론화를 제안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은 “여러 가지 대안을 갖고 있으나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기 전에는 어떤 대안도 억측과 비난만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어 상황을 봐서 천천히 소견을 말하겠다”고 했다. 즉, 이날 대국민 서신은 연정 구성에 대한 여론 형성 차원에서 제기했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지금 연정 구상을 밝힌 데는 여권의 정국 주도력 상실 상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6월 지방선거 직후를 기점으로 급격한 레임덕(임기 말 누수 현상)에 빠질 수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하려는 사전포석이라는 것이다.

▽개헌 논의와 연정은 무관?=청와대 측은 “연정 문제 제기는 개헌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뿌리에 대통령과 국회, 정당 간 권한의 불일치 문제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결코 무관할 수만은 없다.

헌법을 고치지 않은 채 내각, 정당, 국회 간의 관계를 바꾸는 운용의 변화를 통해 이를 해소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발전될 소지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여야 4당은 4색(色) 반응=권력구조의 정상화를 촉구한 노 대통령의 서신에 대해 여야 4당의 의견은 엇갈렸다.

열린우리당 전병헌(田炳憲) 대변인은 “대한민국의 모순된 정치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정당한 문제 제기”라고 적극 옹호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언제나 남의 탓만 하는 대통령이 이번엔 (선거에서 여소야대를 만든) 국민 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에선 의원들 사이에 미묘한 시각 차이가 감지됐다. 노회찬(魯會燦) 의원은 “정책정당 표방을 매개로 여러 가지 공조가 가능하다”며 연정의 길을 열어놓았지만 심상정(沈相정) 의원은 “위기 국면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정치적 수사”라고 깎아내렸다.

민주당 유종필(柳鍾珌) 대변인은 “한마디로 현재 상태에선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뜻”이라며 “국정 실패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라고 꼬집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盧대통령 ‘정파간 연합’ 입장 과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연정은 정파 간 연합을 전제로 한다. 정파 연합을 바라보는 노 대통령의 시각은 그때그때 자신이 의미부여한 ‘시대정신’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정치 입문 후 노 대통령이 가장 먼저 맞닥뜨렸던 정파 연합의 형태는 1990년 민정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헤쳐모여 민자당으로 합치는 이른바 ‘3당 합당’. 당시 통일민주당 소속 초선의원이었던 노 대통령은 이를 “지역주의를 증폭시키는 호남 고립화 전략”이라며 끝내 민자당 합류를 거부했다.

두 번째 만난 정파 연합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金大中) 후보의 국민회의와 김종필(金鍾泌) 총재가 이끄는 자민련이 결합한 ‘DJP연합’.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소속이었던 노 대통령은 ‘3김(金) 청산론’을 내세우며 DJP연합을 거부했던 제정구(諸廷坵) 이부영(李富榮) 씨와는 달리 김원기(金元基) 씨 등과 함께 ‘수평적 정권 교체’를 주장하며 결국 DJP연합을 받아들였다.

노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당선됐을 때 재야의 장기표(張琪杓) 씨는 “노무현 당선자는 김영삼(金泳三) 씨의 3당 합당을 격렬히 비난했지만 3당 합당과 별로 다를 바 없는 DJP연합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은 물론 가담하기까지 했다”고 비난했다.

2002년 대선에서는 ‘국민통합21’의 정몽준(鄭夢準) 후보와 단일화를 시도했다. 이를 두고 당선 이후 연정을 노린 시도가 아니냐는 논란이 적지 않았다. 당시 이회창(李會昌) 권영길(權永吉) 후보가 이를 ‘야합’이라고 비난하자 노 후보는 “단일화를 했지만 정당을 합치는 것은 약속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이번에 연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논거는 “여소야대로는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없다”는 것. ‘여소야대 타파’가 연정의 명분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여소야대라는 상황 자체가 국민의 여당 견제 의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의 이번 주장에는 자신이 이전에 정파 연합을 받아들이는 근거로 삼았던 ‘수평적 정권 교체’ 같은 대의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며 “자기중심적 편의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