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효종 칼럼]열매 없는 ‘野性의 생명력’

  • 입력 2005년 7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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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가 집권 반환점을 돌고 있다. 후반기라고 하기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지만, 씨를 뿌리고 가꾸는 시기를 지나 원숙기에 접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생각해 보면 참여정부가 출범했을 때만 해도 첩첩산중이었다.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고 산타기에 능숙한 사람은 너무 적었다. 오죽하면 대선에서 이긴 참여정부가 적막강산이라고 느꼈을까.

어느덧 참여정부는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융성을 구가했다. 야당이 주도한 탄핵 정국을 일거에 반전시켰고, 국회의원 47명의 신생 여당이 국회 과반의석인 152석을 확보하는 유례가 드문 성공을 과시했다. 올해 4·30 재·보선에서 참패해 ‘여소야대’가 됐으나 이번에는 민주노동당과 연합해 ‘신(新)여대야소’를 성사시켰다.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뤄낸 이 놀라운 힘, 이 정권의 생명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개혁을 부르짖고 기득권 해체를 외쳤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개혁과 정의를 외친 정권이 어디 한둘인가.

참여정부의 생명력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왕성한 요소가 있다. 그것이 국정주도 세력으로서 일가를 이루게 된 내력이기도 하다. 그 생명력은 노무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서 가시적으로 넘쳐흐른다. 패기도 대단하고 말도 시원시원하다. 주요 신문의 비판 논조에도 전혀 두려움 없이 ‘골리앗과 싸우는 의로운 다윗’을 자처하며 직격탄을 날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미국에 대해서는 “얼굴을 붉힐 때는 붉힐 줄 알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큰일이 있을 때마다 ‘국민께 드리는 글’을 통해 직접 국민에게 호소함으로써 국면 돌파에 성공했다. 또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명분으로 친일잔재 청산과 과거사 규명을 내세우는 등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었다.

참여정부의 놀라운 생명력의 비밀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잡초’에서나 볼 수 있는 활기찬 ‘야성의 생명력’이라고 할 만하다. 비판세력이 찍어 누를수록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그 은근과 끈기, 하늘이 무너져 내려도 위축되지 않고 솟아날 구멍을 찾는 느긋함, 그것은 결코 ‘화초의 생명력’은 아니다. 정녕 몇 번에 걸쳐 발생한 ‘정치적 쓰나미’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불가사의한 저력인 까닭이다.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이전을 위헌으로 결정해도, 재·보선에 패배해도 별다른 정치적 타격을 입지 않고 늠름하게 견디고 있는 것이나 야당이 기세등등하게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들고 나와도 정면승부를 통해 이를 부결시킨 것도 끈질긴 ‘잡초의 생명력’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잡초의 생명력은 숲 전체를 우거지게 할 만큼 경이로운 것이긴 하지만, 아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열매가 없다는 점이야말로 잡초의 생명력을 ‘불모(不毛)의 생명력’과 ‘불임(不姙)의 생명력’으로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참여정부가 역동적으로 추구해 온 정책 가운데 열매를 제대로 맺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경제성장만 해도 그렇고, ‘강남불패’를 끝장내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지만 강남 집값은 여전히 ‘불패’다. 회심작으로 내놓은 동북아 균형자론은 어떤가. 교원평가제는 어떤가. 그런가 하면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행담도 개발을 둘러싼 의혹은 뭔가. 철도공사, 조폐공사, 환경부 장관 임명 등에서 보인 최근의 낙선 정치인 ‘낙하산 인사’ 논란은 인사시스템이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는 증거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그러고 보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잡초는 숲 전체를 뒤덮을 만큼 생명력이 왕성해도 쓰임새가 별로인 셈이다. 그렇다면 집권 후반기에는 잡초의 저돌적이고도 ‘활기찬 생명력’이 보다 세련되고 순치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결국 한 정권의 생명력은 얼마나 사납고 왕성했느냐가 아니라 제대로 된 열매를 얼마나 맺었느냐 여부로 평가될 테니까 말이다. 각종 개혁 어젠다를 줄기차게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손에 잡히는 결과가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참여정부가 집권 후반기에는 열매를 맺는 과실수로서 새로운 유형의 생명력을 선보일 것인지 궁금하다.

박효종 객원 논설위원·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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