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영]분열세력이 역사의 승리자인가

  • 입력 2005년 7월 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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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침체, 사회적 양극화, 정치 불신과 같은 말들을 듣기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말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을 정확히 표현해 준다.

참여정부는 경제 선진화, 사회통합, 정치적 신뢰를 이룩하겠다고 선언하며 출범하지 않았던가. 왜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가.

경제에 대한 얘기는 접어두고 사회통합과 정치신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처음부터 이에 관한 말들이 빈말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현실과 역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시각이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바라보는 집권세력의 편파적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부터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민통합을 강조해 왔다. 며칠 후 3·1절 기념사에서는 “내부에 분열과 반목이 있으면 세계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최근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12기 전체회의에서는 “분열한 나라치고 불행에 빠지지 않은 나라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평통회의에서 대통령은 그 말에 이어 “지난날 (우리) 역사의 고비마다 통합을 주장한 사람들은 항상 좌절하고 분열 세력이 승리해 왔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두 주장을 연결해 보면, 한국 현대사는 실패한 역사이고 이는 분열세력 때문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국 현대사를 보는 나름의 시각이 녹아 있는 발언이다. 청와대 측은 분열세력 승리 언급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의 남한 단독정권 수립, 이후 지역주의 조장 세력의 장기집권 등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사실 노 대통령은 취임사와 3·1절 기념사 등에서도 대한민국 건국 이후 역사에 대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시대”라고 말하는 등 수차례 부정적 역사관을 드러내 왔다.

해방공간에서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 대 ‘사회주의-인민민주주의’의 선택의 순간에 대한민국 건국 세력은 분명히 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분열주의이고 기회주의인가? 당시에는 그렇게 보는 시각이 존재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점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어느 체제가 인간의 존엄과 기본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고 있는가. 어느 쪽이 나라가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세계를 둘러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만큼 독립, 건국, 경제발전, 민주화에 성공을 거둔 나라도 없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로서 국군 통수권을 갖고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역사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특히 삼가야 한다. 한국 현대사를 실패한 역사로 보는 것은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과거 자신들을 억압했던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당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솔직히 말한 적이 있다. 이해찬 총리는 “한나라당은 나쁜 정당이고 역사를 퇴보시킬 정당”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역사와 현실 정치세력에 대한 선악(善惡) 판단을 엿보게 하는 말들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악이 제거돼야 통합이 되고 역사가 바로 설 수 있게 된다. 위험한 발상이다.

민족분단, 권위주의, 지역갈등은 모두 우리 현대사의 아픈 일부이고 극복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독선적 역사관 및 절제되지 않은 발언은 통합을 어렵게 한다. 참여정부가 국민통합을 이야기하지만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사 문제의 제기가 정치적으로 의심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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