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미은]사이버 논객과 정치꾼의 차이

  • 입력 2005년 7월 4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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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세상에서 ‘K 양’ ‘L 양’과 같은 이니셜은 필요가 없다. 본문 기사에서 이니셜로 처리한 이름이라도 인터넷 댓글만 보면 ‘K 양’ 등으로 언급된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기사에 나오지 않은 뒷이야기까지 ‘믿거나 말거나’식으로 제공된다. 루머를 확산시키기에 이처럼 효율적인 시스템도 없다.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도 한번 인터넷에서 공격 대상으로 지목되면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도둑으로 몰린 학생이 자살하자 가해자로 지목된 7명의 사진과 신상이 낱낱이 공개되었다. 이른바 ‘7악마 사건’에서는 가해자들에게 “인터넷의 위력을 보여 주겠다”는 다짐과 응징의 결의가 난무했다.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 여성은 전국적인 성토 대상이 됐고 결국에는 피해자가 되어 버렸다. 트위스트 김은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억울한 누명을 썼으며, ‘연예인 X파일’을 통해서 대한민국 전역에 퍼져나간 소문은 진실인가 아닌가가 중요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여론재판이 일상화되고 있다. 한번 지목되면 현대판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야 한다. 조회 건수를 올리기 위해 같은 말이라도 더 극단적으로 내뱉는다. 이 같은 사이버 인민재판을 매카시즘에 빗대 ‘네카시즘’이라는 신조어로 부르기도 한다.

네카시즘이 가장 빈번히 횡행하는 곳이 정치 관련 사이트다.

‘당게 낭인’이라 불리는 누리꾼(네티즌)들이 있다 한다. ‘당원 게시판의 단골 필자’를 일컫는 말이다. 당게 낭인 한 사람이 수백 건의 댓글을 올리는 놀라운 생산성을 보이며 정당의 홈페이지를 점령한다.

최근 열린우리당은 당게 낭인 논쟁으로 시끄럽다. 30∼40명의 소수 누리꾼이 정당 홈페이지를 장악하고 있는 현상은 갈수록 심각한 양상이다. 내용도 정책 대안이나 논리적 비판은 적고 욕설과 비난이 주류라 한다. 군중심리와 사적(私的) 처벌이 뒤범벅된 현대판 마녀사냥이 난무하고 있다. 특정 정치인을 타깃으로 삼아 인격 모독성 공격을 퍼붓는 행위를 두고 ‘성지 순례’라고 하기도 한다. 소수 누리꾼이 비난과 욕설로 정당 홈페이지를 좌지우지하기는 한나라당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현상은 권력 의지의 또 다른 분출이라고도 볼 수 있다. 투표 한 번만으로는 뚜렷이 눈에 띄지 않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인터넷을 통해서 확인하려는 것이다. 참여와 표현은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참여와 표현의 방식이다.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사안에 대해서 가장 감정적인 언어로 욕설을 쏟아 붓는 것은 문제를 푸는 방식이 아니다.

설혹 도덕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비판이 도를 지나쳐 ‘인격 살인’으로 가면 피해자가 되어 버린다. 비판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표현의 자유만 누리고 책임을 지지 않겠다면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니며 민주사회의 원칙에도 맞지 않다.

그렇다고 규제만으로는 풀 수 없는 것이 인터넷 문화다. 교통 문화가 법규만으로 되지 않듯이, 인터넷 문화도 성숙한 시민정신으로 풀 수밖에 없다.

인터넷의 힘은 강력하다. 하지만 인터넷은 복수와 응징의 수단이 아니다. 소통과 이해를 통한 관용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누리꾼, 즉 네티즌은 ‘네트워크’와 ‘시티즌’이 결합된 말이다. 시티즌(citizen)이란 시민으로서의 자각과 책임의식을 가진 주체를 일컫는 단어다. 인터넷이라는 정보고속도로는 근사하게 닦여 있는데 운전자들은 법규위반과 난폭운전을 일삼으며, 툭하면 타인의 인명을 상하는 대형사고를 낸다면 그는 시민으로 불리기 힘들다.

감미은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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