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효·김원철 “어설픔으로 승부… PD가 연습말래요”

  • 입력 2005년 7월 2일 0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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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장광효 씨(왼쪽)와 건축사 김원철 씨.
디자이너 장광효 씨(왼쪽)와 건축사 김원철 씨.
‘다큐 코미디’를 아시나요?

이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 한다면 다음의 ‘김 소장’과 ‘장 샘’(장 선생님)의 대화를 ‘대략 즐겨보셈’.

▽김 소장=“안녕하세요. 저는 인기 건축사 김원철입니다.”

▽장 샘=“안녕하세요. 저는 패션 디자이너 장광효입니다. 인기는 제가 더 많습니다.”

MBC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최근 제작진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장 샘’으로 등장하는 디자이너 장광효(47) 씨와 ‘김 소장’ 역의 건축사 김원철(41) 씨가 만드는 어설픈 연기가 뜨고 있다는 사실. 이름하여 ‘다큐 코미디’의 등장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 장광효 씨의 의상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장 샘’과 ‘김 소장’ 그 자체였다.

▽장=처음 출연제의를 받았을 때 저는 거절했습니다. 나는 정상급 디자이너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직업이라서 망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노도철 PD가 ‘얼짱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해 출연하게 됐습니다.

▽김=얼짱이라뇨. 짝퉁 장국영밖에 안 되잖아요. 저는 예전에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러브하우스’ 코너에 출연한 경험이 있어 제 스스로 방송에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만드는 ‘다큐 코미디’의 웃음 코드는 △연기자가 아닌 다른 직업 종사자들이 직접 출연하는 데서 얻어지는 리얼리티 △연기자가 아니므로 국어책 읽듯 어설픈 연기도 시청자들이 ‘귀엽게’ 봐준다는 관용 △직업적 ‘권위’를 잊은 채 서로 잘났다며 티격태격 싸우는 드라마의 대결구도 등으로 분석된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다른 연기자들이 ‘물’이라면 이들은 ‘기름’과도 같은 존재다. 연기력으로 치면 한없이 부족하지만 물과 섞이지 않는 기름만의 특징이 있다.

▽장=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식당에 가도 ‘귀하신 분이 왔다’며 밥 값 3만 원을 공짜로 해주셨습니다. 또 광주에 다녀왔는데 그 후 인터넷에 ‘광주에 장 샘이 나타났다’는 글도 올라왔고 순식간에 인기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일수록 조신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김=저는 슬픕니다. ‘러브하우스’ 출연 당시 사람들은 ‘어 김 소장님이시다’라며 존경의 눈빛을 보내곤 했는데 지금은 꼬마 아이가 내 앞에서 웃고 갑니다. 내가 웃기는 사람인가 봅니다.

시청자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것은 이들의 연기가 설정인가 진짜인가라는 것. 혹자는 21년째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장 씨와 10년째 건축사로 일하는 김 씨의 어눌함에 대해 ‘진짜 연기’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김=저희는 진짜로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연기하는 겁니다. 대본 외울 시간이 없어 연습도 못합니다. 그런데 저도 이제 몇 번 드라마에 출연하다보니 연기력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어 노 PD한테 말했더니 요새는 연기 연습하지 말라며 대본을 빼앗아갑니다.

▽장=솔직히 저도 처음에는 일부러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제 연기를 TV로 보니 정말 못하는 겁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저랑 연기력이 비슷한 김 소장이 내 옆에 있어줘서….

인터뷰를 하는 건지 ‘다큐 코미디’ 한 편을 보는 건지 시종 헷갈리던 기자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를 물어봤다.

▽김=저는 ‘러브하우스’ 출연 당시 바닥 장판, 아이스크림 등 많은 CF에 출연했습니다. 이번에도 장 샘과 함께 CF 큰 거 몇 개 했으면 좋겠습니다.

▽장=저는 디자이너 장광효입니다. 드라마가 끝나면 저를 웃기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성숙한 시민은 그런 것쯤은 충분히 구분할 줄 안다고 생각합니다.


▼노도철 PD “장 샘-김 소장 이렇게 뜰 줄 몰랐다”▼

‘안녕, 프란체스카’의 노도철(사진) PD는 ‘장 샘’과 ‘김 소장’의 연기에 대해 “미안하다, 놀랍다”고 말했다. 노 PD는 “애초부터 장 샘과 김 소장 역을 부각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며 “그저 진짜 디자이너들을 등장시켜 드라마의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 장 샘과 김 소장을 출연시켰다”고 말했다.

장 샘에 대해 노 PD는 “워낙 연기를 못 하셔서 처음에 많이 고생했지만 현재는 김 소장의 등장으로 다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에 대해서는 “언젠가 함께 식당에 갔는데 김 소장의 흰 머리에 식당 아줌마들이 꺅꺅 소리 지르는 것을 보고 출연 제의를 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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