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효]미국 속의 지한파 줄어든다

  • 입력 2005년 7월 2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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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설정보지 ‘넬슨 리포트’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관해 작성한 특별보고서가 외부에 돌발적으로 공개되면서 그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보고서는 미 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인사들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개인별 영향력으로 보면 딕 체니 부통령의 입김이 단연 압도적이며, 조직별로는 백악관과 국방부 안에 소수정예의 한국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반면 국무부에는 한국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특정인과 특정 조직이 대외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어느 나라의 어느 정권이건 엘리트 계층의 권력이동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마련이다. 문제는 필요한 전문 인력과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고 효율적인 정책 결정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 넬슨 리포트의 분석은 비관적이다. 미국 내에서 차세대 ‘한국통(通)’을 찾아보기 힘들고 능력 있는 유망주들이 한국 연구를 꺼린다는 내용이다. 또 그 이유는 부시 행정부의 잇따른 한반도 정책 실패에 대한 이들의 실망, 그리고 능력보다는 조직에 대한 충성을 출세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미 관료사회의 속성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또 미 하원은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의 애매모호함을 달갑지 않게 여겼으며, 그 이후 북한 핵문제가 줄곧 악화되어 오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강한 불신을 품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미 하원의 한반도 인식을 개선하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곁들이고 있다.

넬슨 리포트가 완벽한 진실만을 담고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주제와 관련된 당사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거쳐 작성된 점을 고려하면 그 내용의 무게를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에 한국을 잘 알고 한국의 입장을 대변해 줄 지한파와 친한파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미 정부의 문제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의 국익에 손상이 가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북한 핵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주한미군의 새로운 역할 모색, 한미 군사협력의 조정 등 양국이 조율해야 할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백악관, 행정부, 의회에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변해 줄 세력이 사라져 간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한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 내 인재 및 인맥 관리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해 왔는지 자성해 보아야 한다. 일본이 리처드 아미티지, 조지프 나이 씨와 같은 미일동맹의 수호자들을 확보하기까지는 정부가 음으로 양으로 나서서 미국의 각계에 일관된 인맥 관리를 꾀해 온 각고의 노력이 숨어 있다.

지금 한국통으로 불리는 미국 내 전문가들은 배우자 또는 부모가 한국인이어서 자연스럽게 한국말과 한국의 사정에 노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원래는 일본과 중국에 관한 지역 연구자였다가 한반도 문제가 중요해질 때면 ‘곁다리’로 한국도 다루게 되는 상황이 다반사다. 한국의 외교안보 이익에 있어 가장 긴요한 협력 상대인 미국을 관리하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몫이자 책임인 것이다. 한국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코드가 맞아서 이야기하기 쉬운 상대만 골라 가까이할 경우, 단기적으로 실용외교는 될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 안목에 따른 대미관계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한국담당 파트는 물론 이들 정부 인사와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는 싱크탱크들을 망라한 체계적인 한미 네트워크 구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개인 차원의 유대관계에서는 서로 잘 알고 마음만 통하면 나머지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 관계는 사람끼리는 통해도 정책이 서로 다르면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한미의 전략적 이해가 한미관계의 틀 안에서 교감을 이루는 호혜적(互惠的) 관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 내 한국 전문가를 확충하는 일은 단순히 사람과 조직을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의 입장과 한국의 대외정책을 미국에 올바로 이해시킬 수 있는 우리의 전략적 사고를 동시에 필요로 한다.

한 가지 더. 미국에 한국통을 기르는 일은 결국 한국에 제대로 된 미국통을 갖추는 일과도 통한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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